언론매체를 통해 줄곧 한국 사회의 경박함을 묵직하게 꾸중해온 영문학자 도정일 교수, 생물학의 근본원리를 동원해 인간사회의 지향을 제시하고자 애쓰는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

그들이 얼굴을 맞댔다. 상상력 풍부한 인문학자와 문학적 소양을 갖춘 과학자의 조우는 단순히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왠지 부족한 듯한 가치 있는 도킹이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두 지식인이 10여차례 만나 나눈 대담과 4차례의 인터뷰를 정리해 엮은 이 책은 한국 사회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진심어린 조언을 들려준다.

“신화적 상상력은 모순물을 서로 공존시키고, 이야기의 결론을 쉽게 내리지 않습니다. 이성과 상상력은 함께 할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포기해서는 안돼요. 모순돼 보이는 것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세상, 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두터운 세계’예요. 20세기 후반 인문학과 예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영감의 한 원천은 생물학입니다. 백악관 부시 팀은 생태학 강의를 좀 들어야겠어요.”(도정일)

“한국의 제도 안에서는 개인의 유전적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제도가 거의 없습니다. 생존의 게임 자체가 시험처럼 획일화된 기준으로 기획돼 있기 때문에 신분상승의 욕망이 왜곡된 형태로 드러나고 있지요. 생물학자가 보기에는 도덕이 인간에게 유리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는 도덕적이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덕 유전자’를 상정해서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더 잘 퍼지게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합니다.”(최재천)

기획의도처럼 “인문학적 사유가 자연과학을 깨우고, 과학적 보편성이 인문학을 자극하는” 시너지가 수시로 발견되는 것이다. 유전자와 문화, 복제와 윤리, 육체와 영혼, 신화와 과학, 암컷과 수컷, 종교와 진화 등 상반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서로 뗄 수 없는 지식인들의 화두가 DNA 나선구조처럼 얽히며 상승한다. 때로 논쟁과 맞장구를 거듭하는 두 지식인, 그 와중에 그들은 물론 독자도 ‘진화의 세례’를 받는다.

읽는 이는 책을 통해 무엇보다 생명공학, 생태학, 신화, 역사, 인류학, 정신분석학을 망라한 두 지식인의 지혜를 손쉽게 제공받을 수 있다. 의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행복은 어디까지인지, 행복이란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 등 우리의 관심사에 대해 폭넓은 전망을 듣는 것도 흥미롭다.

 

 

 

 

마누엘 푸익(1932~1990)은 ‘거미여인의 키스’ ‘조그만 입술’ 등으로 꽤 알려진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다. 젊어서 영화를 공부해 시나리오를 썼지만 빛을 못 보고, 훗날 소설을 통해 영화를 ‘배후조종’한 이력으로 유명하다.

이번 소설은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에, 서사가 아닌 모티프로,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 개입한 작품으로, 그 제목이 먼저 알려진 작품이다.
“성(性)에 대한 금기에 저항하고, 모든 터부에 도전하고자 쓴다”던 그는, 전작들에서 성과 사랑에 대한 허구적 환상 혹은 육체적ㆍ성적 억압의 허울을 까발린 바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보다 근원적인 욕망의 문제를, 특유의 현란한 서사기법 변주와 추리 소설적 장치들로 긴박하게 파고 든다.

시계열을 무시한 서사 전개와 전화통화 인터뷰 해부보고서 등 전변하는 서술 방식은 왕자웨이 영화의 시퀀스 전환처럼 경쾌하고 집요하다.

또 신문기사 형식으로 군데군데 던져놓은 페론 군사정부하의 다기한 사건들, 소제목으로 서사를 이으며 그 내용은 맥락 불명의 시적 환상으로 버무린 실험적 서사전개로 작가는 독자의 쉬운 이해를 방해하며 의식 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이 작품의 성적 묘사들이 지닌 ‘위험한 힘’(번역자 해설)은 발표(1973년)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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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11-18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자부텀 라주미힌님의 탐나는 모월 모일은 제목만 보고 안 볼라구요. 안그래도 보관함에 쌓인 책들이 그뜩하구마는.... ㅜ_ㅜ

라주미힌 2005-11-18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이 출판산업의 기둥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