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변환시키는 경험이 바로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문제와 선 위치를 깨닫는 문턱이 됐다는 점에서 책 내기를 잘한 것 같아요.”

여성학자 정희진씨가 책을 펴냈다.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이란 제목에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은, 지난 2년 동안 <한겨레> <당대비평> <인물과 사상> <여/성이론>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한 데 모은 것이다. 사랑과 섹스, 폭력, 진보, 인권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담론을 ‘다른 시각’으로 분석한 지은이의 예리한 통찰이 돋보인다.

소통·협상·공존의 언어로
소외되지 않는 총체성 지향

정씨는 이 한 권의 책으로 ‘도전’한다. 그 대상은 ‘남성’이 아니라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통념, 상식과 제도이다. 한 가지 목소리만 들리는 세상은, 길이가 맞지 않으면 발을 잘라버리는 푸르크로스테스의 침대와 다르지 않다고 그는 생각한다. 폭력과 억압은 늘 다른 목소리가 없는 데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자기 정의를 내리는 게 필요해요. 자기 정의를 ‘아버지’, ‘서구’, ‘상사’에게 맡기는 데서 억압이 발생하거든요. 언어는 지배의 시작이니까요.”

그런데 왜 하필 그는 ‘불편한’ 페미니즘을 저항의 도구로 선택한 걸까.

“관계의 민주화 없이 역사는 진보할 수 없어요. 페미니즘은 기존의 민족, 환경, 계급에 대한 ‘대안적’ 진보입니다. 모두 여성 문제와 밀접히 관련돼 있거든요. 이런 사실을 부정하는 가부장제야말로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는 거죠.”

그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혁명’이 아니라 소통·협상·공존의 언어이며, 총체성의 부정이 아니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총체성을 지향한다. 따라서 이번 책에서 분노는 찾기 힘들다.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 위주의 주류 사회에 대한 냉소에 머물러 있지도 않다. 오히려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한 뒤에야 생길 수 있을 것같은 여유가 엿보인다.

“예전엔 상처받은 사람은 언제나 ‘약자’이거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달라요. 상처는 깨달음의 쾌락과 배움에 지불하는 당연한 대가이고, 안다는 것은 곧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는 사람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그가 서있는 곳은 언제나, 자신이 고민하는 ‘지금 여기’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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