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숨은아이 > ㅍ/크레인에서 내려오면 물을 먹여주겠단다

정부의 비정규직 방치가 사태 불렀다
[기고]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오마이뉴스(news)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 노동자의 크레인 농성이 벌써 열흘을 넘어섰지만 좀처럼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농성 사태는 우리 시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겪고 있는 불합리한 고용형태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 구조적인 요인은 무엇이고 또 해법은 무엇인지 김성희 한국비정규직센터 소장(경제학 박사)으로부터 들어봤다. <편집자 주>
▲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순천공장 벽면에 '해고자복직 투쟁'이라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2005 시민의 소리
순천의 현대 하이스코 공장에서는 B급 노동자들의 처절한 생존권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 하이스코 하청업체 소속의 61명 비정규노동자들이 15m 상공의 크레인에 올라 공장가동을 멈추게 하고 열흘째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기본급이 80만원이 채 안 된다. 일주일을 꼬박 8시간씩 일하고 잔업까지 해야 12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한 달에 두 번 쉬는데 이나마도 특근수당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게 해서 받은 연봉은 정규직의 절반인 1700만원이다. 비정규직의 차별대우는 외형적인 노동조건을 넘어 식당 이용 제한과 같은 인격 차별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매년 하청업체와 계약 갱신을 해야 그나마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이들은 올해 6월 13일 비정규직 노조를 건설하고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현대 하이스코사는 교섭엔 응하지 않고 오히려 4개 하청업체를 폐업하여 120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후 이들은 5개월 가량 삼보일배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교섭을 요구했지만 현대 하이스코는 "우리 직원이 아니다"는 말로 교섭 요구를 일축했다. 비정규노동자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공장 크레인 점거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8시간씩 일하고 잔업해야 120만원, 이것은 생존권 투쟁이다

▲ 현대하이스코 순천 공장 입구에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진은 쇠사슬로 묶어버린 바리케이드와 그 뒤에서 외부인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는 사측 고용 용역.
ⓒ2005 시민의 소리
현대 하이스코는 정규직이 약 300명에 비정규직은 약 500명인 '비정규직 공장'이다. 연속생산방식이 특징인 철강산업 생산공정에 비정규직이 더 많이 투입되어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원청인 현대 하이스코의 지시감독으로 하청 인력이 직접공정에 투입되는 것은 불법파견의 혐의가 짙다. "하청업체 직원이라 교섭에 응할 수 없다"는 사측 주장에 결정적인 허점이 있는 것이다.

현대 자본의 이런 '강짜 수법'은 비단 이 회사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하이닉스매그너칩 등은 이미 '불법파견인력 활용' 판정을 받았다. 판정에 따라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함에도 현대 자본은 전혀 시정을 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 역시 행정수단 허점을 이유로 아무런 제재나 시정조처를 내리지 않고 있다.

현대 자본은 정부의 책임회피를 빌미로 불법파견 인력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무시하고 오히려 비정규노동자들의 농성을 폭력으로 탄압했다. 이 때도 현대 자본의 논리는 "너희들은 우리 직원이 아니므로 내 땅에서 나가라"는 것이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후안무치한 현대 자본을 탓할지, 말리는 척 팔짱만 끼고 있는 정부를 더 미워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진 사업장에서도 적반하장격의 태도를 보인 현대 자본이 불법파견 진정이 제기되지 않은 현대 하이스코에서 보일 태도는 충분히 짐작이 가는 바이다. 하지만 이제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고공크레인을 점거한 노동자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대가로 회사쪽은 '공장 정상화'를 걸었다.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물을 주겠다는 것이니 이걸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야 하나? 현대 자본은 '불법파견의 대표 주자' '비정규직 착취공장의 주역'에서 나아가 '비인간적·야수적 자본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공장... "우리 직원이 아니니 나가라"고?

▲ 물과 음식물 반입 요구를 현대 하이스코 사측이 거부하자 현대 하이스코 농성 노동자 가족들이 "사람을 살려야 할 것 아니냐"고 호소하며 울부짖고 있다.
ⓒ2005 시민의 소리
현대 하이스코는 자동차의 필수자재인 냉연강판을 계열사에 납품하여 매년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안정적인 생산과 납품이 보장되므로 정규인력 중심의 고용 유지가 가능한 회사인데도 1년짜리 파리 목숨 헐값 노동자 위주로 비정규직 착취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불법의 냄새가 진동하는데 오히려 목청은 더 높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첫째, 불법으로 규정된 제조업 직접공정에서의 비정규직 활용은 현대 계열사에서만 문제되는 게 아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GM대우 등 모든 재벌 대기업의 제조업 사업장에서 만연되어 있다. 한국의 파견업계에서는 정식파견은 면허유지용이고 불법파견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 상식처럼 되고 있다.

연속생산 공정인 자동차, 철강 등의 산업에서 불법파견 혐의가 확연히 드러나는 데다가 비정규노동자의 조직화가 앞서있어 문제제기의 주체가 있고, 여기에 현대 특유의 정면돌파식 대응도 현대 자본이 도드라지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 자본은 "나만 하는 게 아닌데, 어쩔래"라고 되물으면서 "제조업 경쟁력 유지는 비정규 활용으로부터"라는 신자유주의 슬로건을 온 몸에 두르고 앞장서 나가는 고독한 자본의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둘째, 정부는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고도 아무런 제재 조처도 내리지 못하면서 형식적인 시정계획서 제출 얘기만 우물거리고 있다.

정부가 제출해 국회 계류 중인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경쟁력을 위해서는 노동유연화 즉, 비정규직 활용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과도한 비정규직 남용, 차별은 시정되어야 한다'는 판단이 조화를 이룬 모범 답안"이라는 주장이 있다. 불법파견에 대한 정부의 애매한 태도와 꼭 닮았다.

하지만 '활용 확대+남용 억제'라는 절묘한 묘책-한쪽에서 풀고 한쪽에서 담는다?-이 '헛소리'라는 것은 현대 하이스코 사태에 대해 입도 벙긋 못하는 정부의 처지에서도 알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경찰력을 동원해 현대 자본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 자본은 정부의 이런 애매한 처지를 잘 알고 초지일관 막무가내로 나가고 있다. 현대 자본이 스스로 제동장치를 달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이 일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첫 출발의 책임은 일단 법제도 실행의 책임당사자인 정부에게 있다.

비정규법안에 불법파견 시정조치는 없었다

▲ 현대하이스코 하청업체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 61명이 순천 B동과 Q동 크레인 7대를 점거농성에 들어간지 5일째인 28일 오후 하이스코 관리직으로 보이는 50여명이 공장 진입을 시도했다. 농성 노동자들의 저항을 막기위해 A동 옥상에서 직원들이 소방호스를 이용해 계단에 물을 뿌리고 있다.
ⓒ2005 광주드림 안현주
이제 노무현 정부에 물을 때다. 현대 하이스코의 불법적인 비정규활용, 위장폐업을 통한 해고, 비정규직노조의 교섭요구 불응에 대해 어떤 조처를 내릴 것인가?

플랜트노동자들의 상경투쟁을 중재하고 파장을 수습한 뒤 돌아서서 대량구속을 자행한 것처럼 이번에도 기껏해야 미봉책으로 봉합하고 나중에 비정규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방식을 택할 것인가?

정부가 제출한 입법안에도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다. 법안을 대대적으로 손질해 불법파견에 대한 명확한 시정·제재 조처를 담아야 할 것이다. 그 시험대로서 현대하이스코 사태의 중재에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의 생존권적 투쟁은 정당했지만, 지금 노동운동은 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하다"는 요지의 말을 한 바 있다. "노동운동단체들은 비리집단인 데다가 '비정규직과 연대'라는 노동자 정신을 망각하고 있는 세력"이라는 주장이 검찰 수사로 뒷받침된 바 있다. 그러면 비정규직과 연대하겠다는 현대 하이스코 정문 앞의 노동자들은 또 누구인가?

현대 하이스코 정규직들은 고용을 위협할 만한 사안이어서 연대투쟁이 어렵다고 한다. 정규직이 연대투쟁에 나설 경우 사측는 모든 권한을 동원해 큰 싸움판이 벌어질 것이다. 정문 봉쇄와 연대투쟁 저지에만 주력할 뿐 '법제도 제정과 실행'은 방치하고 있는 태도로 볼 때, 정부가 그런 사태를 전향적으로 조정할 리 만무하다.

어쨌든 가장 가까이 있는 정규직 노동자는 연대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역의 노동자들은 정규직, 비정규직을 불문하고 함께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외통수에 걸린 노무현 정부, 비정규착취공장을 멈춰라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노동운동에 대한 대통령의 실망과 분노는 '시대 지체 증상'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라는 생존권적 투쟁만 수십년간 계속되고 있는 이 사회의 개탄스런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 처방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또 그 중심에 비정규직 문제가 있는데 애매한 말만 늘어놓으면서 기존 노동운동에 책임전가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은 개선되지 않는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입으로 연대를 외쳐도 통하던 시대'가 아니다.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직의 투쟁은 생존권적 요구이다. 이 정당한 투쟁에 현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현대 하이스코 자본의 방패막이 역할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노동유연화 정책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노동경제정책과 사회통합을 부르짖는 사회정책, 그리고 비정규직 보호를 표방한 비정규정책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 아니 허점 한가운데에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 착취공장이 서 있다.

▲ 김성희 소장
노무현 정부는 지금 외통수에 걸려 있다. "불법이니 시정해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라"고 하자니 자본이 정면으로 반발할 것이고, 그렇다고 "경쟁력 확보를 위해 비정규직 활용은 불가피하다"고 하자니 현행 법률로는 불법이다.

노무현 정부는 민주개혁을 달성할 수도 있는, 지지할 만한 정부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양산과 착취에 눈을 감고, 확대되고 있는 불평등에 대해 눈을 돌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추종자임은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다시 묻는다. 노무현 정부는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 착취공장을 멈춰 세울 의지가 있는가?
  2005-11-02 20:21
ⓒ 2005 OhmyNew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