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대신 숨진 네팔 19살 카드카
“한달 200달러 벌이” 유혹에 솔깃
수수료 3000달러 주고 속아서 이라크로
입국한 날 무장세력에 잡혀 희생
고용주 미 군수업체 사과조차 없고
제3세계 노동자 송출은 이어진다
박민희 기자
▲ 미군 대신 숨진 네팔 19살 카드카
[관련기사]

현장속 현장

19살 네팔 청년 라메시 카드카는 지난해 8월20일 이라크 서부 안바르에서 머리에 3발의 총을 맞고 숨졌다.

이라크 무장세력 ‘안사르 알 순나’는 카드카와 18살 비슈누 하리 타파 등 네팔 젊은이 12명을 한명씩 끌어내 바닥에 엎드리게 한 채 칼과 총으로 살해했다. 안사르 알 순나는 이들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미군을 돕기 위해 온 이단자”이기 때문에 살해했다고 했다. 네팔 젊은이들은 이라크 서부 알아사드 미 공군기지에서 청소부와 요리사로 일할 예정이었다.

그 한달 전에는 이라크에서 일하던 필리핀 트럭운전사 앙헬로 델라 크루스가 무장세력 ‘이라크 이슬람군’에 납치됐다가 이라크 주둔 필리핀군 51명의 철수 뒤 가까스로 풀려났다.

2년 7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가장 밑바닥에서 ‘떠받치고 있는’ 것은 가난 때문에 이라크로 가게 된 네팔,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의 빈곤 약소국 노동자들이다. 수백만명의 이라크인들이 실업상태로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지만 미 군수지원 기업들은 이들을 고용하길 꺼린다. 미군 당국은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미군기지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남아 등에서 온 노동자들을 고용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군의 군수지원 하청업체들로부터 재하청을 받아 제3세계 노동자들을 이라크로 데려가는 업체들은 노동자들의 안전이나 인권을 보호하지 않고 있으며,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대한 불법 인력거래망을 통해 이라크로 보내진 뒤 ‘현대판 노예노동’으로 착취당하거나 목숨을 잃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시카고트리뷴> 등 미국 언론들이 전하고 있다.

전쟁터로 향하는 거대한 인력이동 대열을 만들어낸 것은 미군의 전쟁을 대행하는 미국 사기업들이다. 이들 기업들은 이라크에서 미군기지 건설과 경비, 요리와 식당운영, 세탁과 청소, 쓰레기 수거, 경호, 최신형 무기 유지와 보수, 우편 업무 등 전투를 뺀 전쟁의 모든 영역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가 딕 체니 부통령이 90년대에 최고경영자를 맡았던, 석유업체 핼리버튼과 토목관련 기업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KBR)다. 이들 기업은 90년대 1차걸프전에 참여해 큰 수익을 올리면서 군사용역 업체로 우뚝 섰다.

물론 KBR 직원들이 직접 요리와 청소를 하지는 않는다. KBR 한 기업만해도 중동에서 200개 이상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으며, 이 하청업체들은 인력송출업체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모집한 뒤 이라크로 데려간다고 <시카고트리뷴>은 전했다. 미국 언론들이 추적한 바로는 미 군수업체에 고용돼 이라크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몇만명이나 된다. 이미 2천억달러를 넘어선 미국 이라크전비의 상당 부분은 이들 ‘전쟁 대행 주식회사’나 군수업체들에 흘러들어갔지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미군들이 더이상 하지 않는 ‘더러운 노동’을 떠맡고 있는 것은 가장 가난한 3세계 노동자들이다. KBR은 3세계 출신 노동자 2만5000여명을 하청업체를 통해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네팔인 5000여명이 이라크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군과 마오주의 반군의 내전으로 1996년 이후 1만2500명 이상이 숨진 네팔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고 있다. 해외에서 일하는 네팔인들이 국내에 송금하는 돈은 네팔 전체 국민생산의 5분의 1이 넘는다. 네팔 노동자들은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는 이유로 이라크에서도 인기가 높다. 영국 식민통치 시절부터 구르카로 불린 “용맹한” 네팔 병사들은 외국의 사설 경호업체의 “우수 인력”으로, 바그다드 공항과 핵심지역인 그린존 등의 경비를 맡고 있다.

중동과 동남아 일대에는 노동자들을 이라크로 보내는 인력송출업체들과 브로커들이 ‘맹활약’ 하면서 큰 수입을 올리고 있다. 브로커들은 ‘이라크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하거나 먼저 요르단 등으로 데려간 뒤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며 다시 이들을 이라크로 보내기도 한다. 노동자와 가족들로부터 거액의 수수료도 받는다. 노동자들은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높은 이자로 큰 빚을 얻고 이는 이라크에서 벗어날 수 없게하는 족쇄가 된다.

수수료 빚더미 떠안아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난 카드카도 수도 카트만두에서 한달에 38달러를 받고 일하다가 브로커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외국에 가 미군 부대 요리사로 일하면 한달에 200달러를 받게 해주겠다는 유혹이었다. 어디에 있는 미군 부대에서 일하게 해줄지를 말하지 않았다. 카드카는 브로커에게 수수료 3000달러를 주고 도망치지 않는다는 보장으로 여권을 맡겨야 했다. 가족들은 연 23%의 이자로 돈을 빌려 수수료를 냈다. 카드카는 “돈을 벌어와 다쓰러져가는 오두막집 옆에 콘크리트 집을 지어 주겠다”며 가족들을 설득했다. 카드카와 함께 살해된 타파도 카트만두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외국에 가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요르단으로 갔다. 10대의 두 젊은이에게 이것은 마지막 여행이 됐다.

이라크전 특수로 활기를 띠고 있는 요르단에서는 또다른 브로커인 인력업체 모닝스타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업체 KBR과 병사들의 식사와 세탁 업무 하청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다우드앤 파트너스가 여기서 카드카와 타파 일행을 소개 받았다. 일행중 일부는 이라크로는 갈 수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수수료를 내느라 진 빚 때문에 이라크행 버스에 탈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에도 요르단에서 이라크로 들어가는 도로는 무장세력이 일상적으로 여행자들을 습격하는 곳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다우드앤 파트너스는 이들에게 아무런 무기도 주지 않았고 보안요원 한명 동승시키지 않았다고 <시카고트리뷴>은 지적한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2004년 8월19일 그 도로에서 노동자들은 사라졌다.

다음날 네팔에 있는 카드카의 집으로 이웃이 다급하게 찾아와 텔레비전에 끔찍한 비디오가 나온다고 알려줬다. 카드카의 어머니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여권을 든 채 무장괴한의 위협을 받고 있는 아들을 알아봤다. 청년들은 차례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요르단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는 브로커에게 속아 이라크로 왔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브로커에게 찾아가자 그는 청년들이 돌아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뒤 도망쳐버렸다. 네팔 정부도 별다른 노력을 해주지 않았다.

이틀 뒤 두번째 비디오가 공개됐다. 낡은 청바지에 초라한 셔츠를 입은 노동자들이 땅바닥에서 차례로 살해되는 동안 화면은 클로즈업돼 고통으로 일그러진 이들의 얼굴을 비췄다. 이날부터 분노한 시위대가 이슬람사원을 불태우고 해외인력송출 업체들을 공격하자 정부는 24시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국민들의 울분이 가시지 않자 며칠 뒤 정부는 문제가 된 인력송출회사의 영업허가를 취소하고, 유가족마다 1만4천달러의 보상금을 주겠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대부분 그돈으로 수수료를 내느라 빚진 원금과 훌쩍 불어난 이자를 갚아야 했다.

그러나, 네팔 청년들을 이라크로 데려간 업체들의 원청업체인 미 군수업체 KBR은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보상도 하지 않았다. 법률 전문가들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숨진 네팔인 12명은 미국 회사에 고용된 것으로 봐야하며, 미국 법에 기초해 마땅한 사망 보상금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 연방법은 KBR과 하청업체들이 숨진 노동자들에게 ‘국방기지업무 보험’을 제공해야 하며, 유족에게 1년에 54000달러의 연금과 의료보험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 기업 법적 책임 있다

12명의 주검은 찾을 수가 없었고 가족들은 이들의 조각상을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 카드카의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이 왜 죽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애는 반란세력도, 군인도 아니었다. 그냥 일을 하러 갔을 뿐이다.”

카드카와 앙헬로 사건 이후 네팔과 필리핀 정부는 자국인들이 이라크로 일하러 가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브로커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지금도 노동자들을 계속 이라크로 송출하고 있다. 네팔 정부는 최근에도 이라크로 노동자들을 보내온 32개 인력송출업체를 폐쇄시킨다고 발표했다. 또 이라크로 노동자들을 보내다 적발돼도 브로커는 벌금만 내면 됐던 조항을 고쳐 형사범으로 처벌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브로커들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으며, 노동자들을 직접 이라크로 보내지 않고 인도, 요르단 등 주변국가로 보낸 뒤 다시 이라크로 보내 규제를 피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네팔 정부는 노동자들의 해외 송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이들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요즘도 인력송출은 네팔에서 유일하게 번성하는 사업이다. 10년 전만해도 몇개에 불과했던 해외인력송출업체는 530여개로 늘어났다. 카드카와 11명의 젊은이를 이라크로 보낸 인력업체 사장 발라 감 피리는 해외로 도망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시카고트리뷴>의 취재 결과 버젓이 카트만두 시내에서 다른 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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