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리더십의 폭력성

[강준만의 세상읽기]

대연정 제안을 반대한 것은 ‘제2의 민주당 분당’처럼 보였기 때문
언제부턴가 뚜벅뚜벅 걷는 법 잊은 대통령이 드라마 PD가 된듯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노무현 대통령님, 안녕하시지요? 이 글을 올리기까지 많이 망설였습니다. 대통령에게 과부하를 주는 한국 사회의 ‘대통령 중독증’을 비판해온 사람으로서 저까지 그 ‘중독증’에 일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강준만, 나는 누구인가

그런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대통령님께 글을 올리기로 한 건 소통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님을 비판하건 지지하건 대통령님에 대해 언급한 그 어떤 글을 봐도 상대편과의 소통을 위한 배려가 거의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서 대통령님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 모두 참 답답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저 자신 그간 대통령님을 꽤 비판해왔습니다만, 저의 비판 역시 소통을 위한 건 아니었다는 걸 인정합니다. 대통령님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분들도 소통을 우선시하지 않는 건, 이유는 각기 다를망정 저의 경우처럼 그럴 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더군요. 저는 모든 분들께 그 내면의 이야기까지 다 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소통을 위해서입니다.

저부터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저의 대통령님 비판은 그간 대통령님의 열성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가장 많은 비판은 제가 감정적 대응을 한다는 것이었지요. 민주당 분당에 반대했던 사람으로서 그때의 ‘반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의 비판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좀 다른 이유에서 그런 비판에 일리는 있다고 봅니다. 제가 동의할 수 없는 건 “나는 누구인가?”라는 점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그런 비판을 저에 대한 과대평가라고 보았지요. 저는 그간 국가와 민족, 즉 전체를 위한 글쓰기를 해온 것이었을까요? 전 그건 아니었다고 봅니다.

대통령님에 비해 길지 않은 인생입니다만, 과거 제 인생에 이런 일이 있었지요. 어느 조직에서 어떤 사람이 왕따를 당하는 겁니다. 왕따당할 만한 일을 많이 했던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그 사람에 대한 조직 성원들의 응징은 너무 가혹했습니다. 전 홀로 그 왕따를 당하는 사람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 제겐 조직의 안녕과 번영 따윈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정의를 대변한다는 다수의 ‘폭력’에 대한 반감이 저의 모든 관심을 지배했지요.


△  대통령의 열성지지자들에게 선명한 개혁전선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일해야 하는 권력 엘리트층에 그 전선은 다분히 허구적이다. 지난 9월 노사모 전국대표일꾼 선거 출마자들의 토론회 모습. (사진/ 류우종 기자)

저는 평소 소심하고 여린 성격의 소유자인지라 정의감은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연에 의해 선택을 사실상 강요당하는 상황, 또는 자신이 했던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까지 내뺄 만큼 슬기롭지는 못합니다.

대통령님은 최근에서야 공개적으로 인정하셨습니다만, 대통령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 민주당 분당은 제게 매우 폭력적으로 비쳤습니다. 왜 그랬는지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대통령님께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게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정당이며 당연히 개혁 대상이라는 건 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요. 그래서 전 “정당으로 쳐들어가자”는 선동을 하기도 했고 유시민씨가 깃발을 든 개혁당 당원으로 가입하기도 했지요. 제 딴엔 민주당의 대대적 개혁을 위한 대행진에 미력이나마 기여하고 싶은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님은 민주당 분당을 원하셨습니다. 좋습니다. 분당도 못할 건 없지요. 제가 폭력적으로 느꼈던 건 민주당을 ‘반개혁 정당’ ‘지역주의 기생정당’으로 몰아붙이는 전략이었습니다. 저로선 결코 동의할 수 없었지만, 모두 대통령님이 원하는 대로 되었습니다. 그게 다 이 나라의 개혁을 위하는 정의로운 일이었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분열주의 전략은 얄팍하다

그렇지만, 대통령님! 모두 다 개혁의 화신이 되는 것도 좋겠지만 민주당이 그렇게까지 매도되어도 좋을 정당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극소수나마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 다 자신도 가담했던 과거에 침을 뱉으면서 새 역사 창조에 줄을 서야 하고 꼭 국가와 민족이라는 전체를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 전체 중심의 사고야말로 개발독재 시대의 유산이 아닐까요?

어디 그뿐인가요. 독재정권 시절에 탄압을 받으면 명예나마 얻을 수도 있었지만, 대통령님의 뜻에 반해 몰락하면 반개혁·지역주의 기생세력으로 전락해 영원히 불명예에서 벗어날 길이 없잖습니까. 설사 대통령님의 비전에 공감해 대통령님을 지지했고 여전히 지지하고 싶어도 방법론에 조그만 이견이라도 드러내 대통령님의 줄에 서지 않으면 그런 운명을 감수할 수밖에 없지요.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대통령에게 대들면 그래도 용감하다는 칭찬이라도 들을 수 있었지만, 대통령님처럼 탈권위주의의 화신으로 비쳐진 대통령의 뜻에 반하면 그런 혜택조차 주어지지 않지요.

대통령님! 전 이 모든 게 폭력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상징적 폭력이 물리적 폭력 이상으로 무서울 수 있다는 것도 절감했습니다. 이는 제가 대통령님의 매력에 반해 지난 2001년 봄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이라는 책을 썼을 때의 그 심정입니다. 전 당시 개혁세력 내부에서조차 노무현을 왕따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분노해 그 책을 썼고, 몇년 뒤 그때의 심정으로 다시 대통령님의 줄에 서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박해에 분노해 대통령님을 비판하게 된 겁니다.

전 대통령님이 제안한 대연정에 반대했습니다만, 그 이유는 다른 분들의 반대 이유와 좀 다릅니다. 저는 그걸 ‘제2의 민주당 분당’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일관성은 대통령님께 있다고 믿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대연정 제안에 대한 싸늘한 반응을 보고 의아해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수개월동안 국민들에게 연정을 ‘학습’시키려 했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거부로 한발 물러났다. 10월1일 계룡대 연병장에서 만난 노 대통령과 박 대표.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저는 또다시 대연정 구상에서 폭력성을 발견합니다. 대통령님 못지않은 개혁 의지로 충만한 열린우리당 의원일지라도 죽어도 대연정엔 찬성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대연정 드라이브가 성공한다면, 그들은 또 반개혁 세력으로 찍히는 동시에 몰락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통령님의 열성 지지자들이 가만 놔두질 않지요. 제가 알기로 대연정의 참뜻은 ‘화합과 포용’인데, 대통령님의 일부 지지자들은 공격적인 적대감으로 무장해 대연정을 외치고 있으니 이걸 어찌 이해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 소용돌이 효과를 아십니까

대통령님! 저의 문제의식은 대통령님이 구사하시는 리더십의 폭력성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새판 짜기를 위한 필요악으로서의 분열주의 전략은 새로운 정치 시장을 창출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파워를 보여줄 수도 있지만 폭력성과 더불어 ‘얄팍함’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는 거지요. 문제의 핵심은 그건 ‘노무현 브랜드’와 전혀 맞지 않는 속성이라는 겁니다. 그건 일종의 부메랑 효과로 나중에 대중적 냉소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간파하기가 쉽지 않으니 더 문제지요. 대통령 비판이 ‘국민 스포츠’가 된 것도 수구 기득권 세력의 음모 때문이라기보다는 바로 그 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대통령님은 언제부턴가 뚜벅뚜벅 걷는 법을 잊으셨습니다. 대통령님이 자꾸 드라마 PD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대통령님의 대통령 당선 자체가 드라마의 연속으로 가능했던 것인데, 그건 불가피한 게 아닌가 하는 이해를 해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만, 그렇게 해선 성공적인 국정운영이 어려워진다는 게 문제였지요. 노무현 브랜드의 정체성이라는 건 이념이나 정책노선보다는 오히려 노무현 개인의 행태적 특성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었을까요? 저는 이 점이 여론조사로는 결코 규명될 수 없는, 대통령님의 지지도 하락 이유 중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 국민들의 탄핵 반대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라기보다 '대통령 소용돌이 효과' 때문이다. 노사모 회원들이 탄핵 기각을 기원하며 고양시 장항나들목 가로수에 매달았던 리본.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대통령님! 대통령직을 수행하시는 데에 생각하셨던 것보다 어려움이 많지요? 그 어려움엔 수많은 이유들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무언가 빨리 이루려는 대통령님의 조급증과 더불어 과도한 자신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전 안희정씨가 역설했던 ‘386 역할론’에 주목했습니다. 안씨는 “젊은 세대가 정권의 주역이 된 것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40년 만”이라며 “그때는 군인들이 총칼 들고 한강을 건너 정권을 장악했지만 우리는 노사모와 노란 목도리를 매고 한강을 건넜다”고 주장했지요. 전 처음엔 이 말을 수사적인 수준에서 받아들였습니다만, 그게 아니더군요. 대통령님도 공감하는 참여정부의 기본 신념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보며, 바로 그런 신념이 참여정부의 어려움을 초래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님은 너무도 탈권위주의적이라 이해하시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국 사회의 숙명이라 할 ‘대통령 소용돌이 효과’는 독재정권 시절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답니다. 절대다수의 국민이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건 대통령님에 대한 지지 때문이 아니라 나라의 중심인 대통령을 흔들어 혼란을 초래하는 작태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민주당의 몰락도 호남인들의 개혁 의지 때문이라기보다는 대통령 권력에 의한 소용돌이 효과 때문이라고 보는 게 진실에 더 가까울 겁니다.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참여정부 스스로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는 함정에 빠지게 되며, 실제로 이는 대통령님은 물론 대통령님의 열성 지지자들에 의해 자주 발설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가 오랜 세월 누적된 수구 기득권 세력의 거대한 포위망에 갇혀 있으므로 오직 그들과 맞서 싸울 뿐 내부 비판을 할 겨를이 없다는 논리와 그에 따른 실천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거든요.

너무 겸손해 겸손을 잊어버리는 역설

대통령님! 그렇게 선명한 전선이 그어질 수만 있다면 그런 논리와 실천도 괜찮을 겁니다. 그렇지만 대통령님이 직·간접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한 500대 고위직 인사들을 놓고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들 중 대통령님의 개혁 비전과 열망을 공유한 사람이 얼마나 되리라고 보십니까? 이건 정말 중요한 점입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수많은 공기업에 수많은 대선 공신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갔습니다만, 과연 어디에서 이렇다 할 개혁의 움직임이 일고 있던가요? 지금 저는 참여정부를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름 없는 대통령님의 열성 지지자들만 생각하면 선명한 개혁 전선은 분명히 존재합니다만, 실제로 일을 해야 할 권력 엘리트층을 놓고 보자면 그 전선은 다분히 허구적이라는 거지요. 고위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자)’만 놓고 보더라도 참여정부가 이전 정부들에 비해 큰소리칠 게 전혀 없다는 거지요.

실제로 부동산 투기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대통령님부터 자꾸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강조하십니다만, 그게 그렇질 않습니다. 저항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 이전에 훨씬 더 중요한 정책 실패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혹 박태견 <프레시안> 논설주간이 최근에 출간한 <참여정권, 건설족 덫에 걸리다>라는 책을 읽어보셨습니까? 전 대통령님이 꼭 그 책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 책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시지 않더라도 부동산 투기 문제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쪽은 다름 아닌 대통령님 자신일 수 있다는 성찰을 해보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대통령님! 지금 저는 뜨거운 개혁 열망을 자제하시라거나 자책을 먼저 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게 아닙니다. 지금 참여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대국민 관계에서 ‘인식의 괴리’와 ‘소통의 부재’에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우리는 노사모와 노란 목도리를 매고 한강을 건넜다”는 신념이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대통령님에게서 역설을 자주 봅니다. 예컨대, 너무도 겸손한 성품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겸손을 잊어버리는 역설입니다. 가수 조영남씨는 “돌아가신 울아버지 울어머니 겸손하라 겸손하라 하셨지만 지금까지 안 되는 것은 딱 한 가지 그건 겸손이라네”라고 노래했지요. 대통령님의 경우엔 늘 개혁을 생각하다 보니 도저히 겸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리라 믿습니다만, 그래도 국민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시고 입술을 깨물어가면서라도 늘 겸손하시길 빕니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의 겸손은 무익할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고 주장했습니다만, 그건 대통령님의 리더십 모델과는 다른 모델에서나 통하는 말이겠지요.

꼭 성공하셔야 합니다

저는 참여정부의 성공을 바랍니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대통령님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한국 사회의 발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이나 대통령님의 측근 인사들이 행여 손 탁탁 털며 “우린 애초부터 잃을 게 없었다”고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꼭 성공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자주 이런 편지를 올려 대통령님과 민심의 상호 소통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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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0-2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따 무지 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