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줄게, 내 아이 낳아줘”
곤충도 ‘짝짓기 프러포즈’
2005년 10월 14일 | 글 |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ㆍwolfkim@donga.com |
 

영국에서 발견된 파리의 일종은 수컷이 암컷에게 죽은 곤충 같은 선물을 주고 교미를 시도한다(위). 하지만 수컷은 때때로 속이 비어 있는 명주실 뭉치를 암컷에게 건네주고 짝짓기에 성공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결혼 시즌인 가을이다. 결혼에 성공하기 위해 남녀가 서로에게 선물공세를 펼치는 것은 흔한 일. 하지만 인간을 제외한 동물에서는 암컷이 선물을 주는 사례가 전혀 없다. 짝짓기를 위해 오로지 수컷만이 ‘예물’을 준비한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는 “자손을 얻는 일에 암컷이 수컷에 비해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요하기 때문에 결혼 준비는 당연히 수컷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물의 종류는 대부분 음식이다. 최 교수는 “암컷은 임신을 대비해 영양분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며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이 음식을 준비해오지 않으면 암컷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길이 2mm의 민벌레의 경우 수컷은 교미할 때 머리 한복판에 있는 분비샘에서 영양분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한 방울씩 만들어낸다. 암컷이 다가와 이 분비물을 먹기 시작하면서 둘의 짝짓기가 시작된다. 여치나 반딧불이 수컷은 교미할 때 단백질이 듬뿍 들어 있는 주머니를 선물로 제공한다. 주머니의 한쪽 끝에는 정자들이 모여 있는데(정자낭) 교미할 때 이 부분이 암컷의 생식기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밖으로 노출된다. 교미 후 암컷은 몸을 둥글게 말아 밖으로 노출된 ‘선물’을 먹기 시작한다. 만일 선물이 작으면 정자낭까지 먹어 치우기 때문에 수컷은 가능한 대로 커다란 것을 준비해야 번식에 성공할 수 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목숨 걸고’ 짝짓기를 시도하는 거미류이다. 일부 거미의 수컷은 교미를 하러 다가오다 먹이로 오인돼 암컷에게 잡아먹힌다. 거미줄에서 먹이가 걸렸을 때와 수컷이 다가올 때 암컷이 느끼는 거미줄의 진동 정도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벌어진다는 설명이 있다. 수컷의 몸이 예물로 바쳐지는 셈이다. 물론 사마귀 수컷이 교미 도중 암컷에게 잡아먹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거미의 어떤 종류(Pisaura mirabilis)는 암컷의 관심을 딴 데로 끌기 위해 먹이를 명주실로 둘둘 감싸 선물로 준다. 암컷이 포장을 풀고 음식을 먹는 동안 재빨리 교미를 마치고 ‘탈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암컷이 먹이를 놔둔 채 여전히 공격적이면 기발한 속임수를 쓴다. 죽은 척하며 꼼짝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암컷이 식사를 하는 동안 뒤로 다가가 교미를 성공시킨다. 동물 세계에서 적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죽은 척하는 사례는 많지만 생식을 위한 경우가 보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연구논문은 국제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 온라인판 5일자에 소개됐다.


반딧불이 수컷이 교미 선물로 준비하는 주머니(왼쪽)와 암수의 교미 장면. 선물 주머니의 일부만 정자로 채워져 있고 나머지는 암컷이 섭취할 영양분으로 차 있다.
영국에서 발견된 파리의 일종(Rhamphomyia sulcata)에서는 수컷이 가짜 예물을 주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다. 보통은 수컷이 작은 곤충을 먹잇감으로 암컷에게 준 후 짝짓기를 시도하지만 매번 만족스러운 예물을 준비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수컷이 짜낸 전략이 ‘가짜 명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환경진화생물학과 나타샤 리바스 교수는 올해 초 이 파리의 암컷에게 속이 비어 있는 명주실 뭉치를 제공하는 실험을 했다. 그러자 암컷은 이를 먹이로 착각하고 평소대로 뒤에 수컷이 다가와 교미하는 것을 그냥 놔뒀다. 물론 암컷이 선물을 풀어 보고 가짜인 줄 눈치 채기 전 순식간에 이뤄지는 일이다. 리바스 교수는 “수컷이 나뭇가지나 잎 같은 쓸모없는 선물을 암컷에게 종종 준다”며 “수컷이 속임수로 번식을 성공시킨 흥미로운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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