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사회당 기관지 원고>

청계천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2
- 정책이 아닌 Event의 한계 -

이헌석(청년환경센터 전 대표, GreenReds@hotmail.com)

6.13 지자체 선거를 지나면서 나에게는 큰 화두가 하나 있었다. “과연 진보정당에게 정책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흔히 우리는 정책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선거는 상호 비방이 아니라 정책대결선거가 되어야 한다고도 말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정책”이란 말은 너무나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어서 “정책”이라는 같은 한국어 표현도 마치 서로 다른나라 말로 이야기하고 있는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책의 사전적 의미는 “정부․단체의 앞으로 나갈 노선이나 취해야할 방침”이다. 하지만 정책이란 표현은 흔히 총학생회 정책국처럼 노선이나 방침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핵발전정책”이나 “대북강경정책”처럼 정부의 공공정책(public policy)의 의미로 국한되기도 한다. 또는 행정기관에선 “건폐율억제정책”처럼 뚜렷한 목적과 함께 지칭해 계획(plan)이나 기획(planning)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이 경우 정책은 집단간의 상충한 이해를 조정, 조율하는 의미가 많이 부각된다.) 시민단체 등에선 정책은 법․제도와 동일한 말로 쓰이기도 한다. “**정책 수립하라!!”는 구호는 대부분 관련한 법․제도를 개선하라는 말과 동일시 때문이다. 한편 학생운동진영에서 정책이란 - “정책 소양이 뛰어난 선배”라는 말처럼 - “이론적 접근”, “정세분석능력”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표현들 중에서 무엇보다 혼란스러웠던 것은 정당 - 그것도 “선거운동기간동안의 정당의 정책”이란 표현이었다. 많은 이들은 선거 정책과 선거 공약, 선거 컨셉을 포함한 선거 이미지 전략을 혼동했고, 심지어 이 모두를 통칭해서 선거 정책이라고 부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선본의 환경정책은 거의 모두 몇 줄의 공약으로 등치되었고, 선본의 이미지를 담은 컨셉과 슬로건이 정책으로 불리는 등 많은 혼란이 이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진중권을 비롯한 이들의 정책부재논란까지 있었으니 참으로 혼란의 연속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럼 다시 청계천 복원문제로 돌아가보자.
누군가의 말처럼 “청계천 문제의 모든 모범답안은 청계천살리기연구회(이하 청계천연구회)가 가지고 있었다.” 처음 문제제기를 했던 것도 청계천연구회였고, 관련 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2년여 동안 연구를 해왔기에 복원 찬성-반대측을 통털어 청계천연구회만큼 진지하고 심도 깊은 연구를 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청계천문제를 이슈화하려고 했던 서울시장선거의 모든 선본은 짧은 시간안에 “모범답안”을 소화하기에 급급했다. 자신의 제1공약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이명박선본 조차 청계천연구회의 복원예산안에 감리비용을 더하고 운하건설설비용을 빼는 등 약간의 수정을 가했을 뿐 독자적인 정책개발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환경“운동”에 가까이 있었던 3명의 진보후보 조차 모두 같은 이야기 - 청계천 연구회의 연구결과 -를 그대로 읽어가는 수준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누구도 “정책”을 고민하지 않고 나왔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청계천 복원문제가 제기된지 1-2년 밖에 안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너무 심한 결론이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정책”이라는 개념 속에서 “정책”의 실체는 없고 선거에서 부각을 시킬 수밖에 없으면 자연스럽게 택하는 것은 “이벤트” 밖에 없다. 각 후보들은 청계천 현장답사는 기본 코스로 하고 언론사의 사진찍기가 그대로 이어졌다. “후보 공동선언” 같은 연대투쟁이 제안되고, 일각에서는 “청계천 점거 시위”나 “플랭카드 시위”가 검토되기도 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기획(planning)에서 이벤트는 매우 중요하다. 부각되지 않는 이슈를 부각시키고, 문제의식을 전파하는데 이벤트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짧은 선거운동기간동안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선거의 특성상 선거는 정책 대결이라기 보다는 이벤트 대결 - 그 중에서도 특히 언론을 위한 이벤트 대결 - 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책”의 부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이벤트는 누가 보더라도 분명히 드러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이벤트 대결은 보수정치권의 “원조보수” 논쟁만큼이나 민중들을 실망시키고, 한국정치를 또다시 수렁으로 빠뜨리는 일이다. 또한 진보정치의 이벤트화는 그동안 진보진영이 쌓아온 많은 성과물들을 희석시킨다. 보수정치권보다 환경운동에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고민하고 적용시킬 방법을 찾지 못한 진보진영의 “청계천 복원 문제” 접근은 그동안 진보진영의 성과물이 얼마나 손쉽게 희석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정책은 저 깊은 도서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산 속에서 수도하다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일상에서 투쟁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마련해 나가는 기획이자 계획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치밀하고 세밀한 계획들이 모여질 때, 진정한 정책정당-정책대결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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