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공자가 간다 - 해동 선비가 찾아나선 열정과 수난의 주유천하 14년
진현종 지음 / 갑인공방(갑인미디어)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공자 가라사대, “보석은 마찰이 없이는 가공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시련이 없이는 완벽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구도의 과정에 있어서 고행과 시련은 담금질처럼 작용하여 성숙한 인간으로 발돋움하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주어 내밀한 품성을 가다듬게 하고,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의무를 조화롭게 이끌어 낼 수 있는 개인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하지만 개인을 넘는 공공적인 일이기도 하다. 공자를 비롯한 성인이라 불리는 자들이 남긴 사상과 역사는 이미 공공의 것이고, 그것은 치열한 구도의 과정을 통하여 완수된 것이지 않은가.

주유천하 14년, 관직을 찾아 14년을 헤맨 공자의 유랑생활을 담은 이 책이 담아내려는 것은 그것의 맛보기이다. 고위관직에 있으면서도 굳이 다른 관직, 다른 군주를 찾아 나서는 공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공자 가라사대, “가지를 잘 쳐주고 받침대로 받쳐 준 나무는 곧게 잘 자라지만, 내버려 둔 나무는 아무렇게나 자란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남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말을 잘 듣고 고치는 사람은 그만큼 발전한다.”

공자의 뒤를 따른 자들이 있었으니 그의 제자들은 그의 제자이면서도 스승이었다. 나이는 들어 가고, 제대로 된 관직과 군주를 만나지 못한 공자는 무척이나 흔들림을 보였다. 여기 저기서 뻗쳐오는 유혹의 손길을 내치기에는 아무리 군자라 하더라도 힘든 것이다. 불경한 자에게 가려고 하자 반감을 드러낸 자로에게 늘어놓는 공자의 궁색한 변명을 보라. ‘진정으로 강한 것은 갈아도 얇아지지 않고, 진정으로 하얀 것은 물들어도 검어지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 어찌 쓸모 없는 박이 되란 말이냐? 어찌 매달려 있기만 학 사람에게 먹히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인가. 성인, 군자라는 완벽한 이미지를 깨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또한 제자가 아니었으면 깨져버린 신화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제자들은 공자의 목숨까지도 보존케 하였다. 수많은 난관과 위협을 제자들 없이 이겨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공자 가라사대, “덕이 높은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그를 따르는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권위적이어서는 안 된다.
공자 가라사대,
“바다와 강이 수백 개의 산골짜기 물줄기에 복종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항상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 있기 바란다면 그들보다 아래에 있고, 그들보다 앞서기를 바란다면, 그들 뒤에 위치하라. 이와 같이하여 사람들의 뒤에 있을지라도 그의 무게를 느끼지 않게 하며 그들보다 앞에 있을지라도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나이, 지위를 불문하고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가르침이고 자세 아닌가. 물론 이 책에서는 그런 구체적인 모습이 보이지는 않으나, 주유천하에 있어서 제자들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훌륭한 스승은 훌륭한 제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공자 가라사대, “군자는 세 가지 경계할 바가 있다. 젊었을 때는 혈기가 잡히지 않았기에 여색을 경계하고, 장년이 되면 혈기가 바야흐로 굳세므로 다투는 것을 경계하고, 늙으면 혈기가 이미 쇠하였음으로 탐욕을 경계하라.”

이 책의 저자가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부분은 나이에 굴하지 않는 ‘열정’에 있다. 생명하나 부지하기 힘든 난세를 향하여 던진 출사표에는 대단한 결단과 용기가 서려있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노자’가 보기엔 세속적이었을 것이다.(이 책에는 노자와 공자의 세기적인 만남도 있다.) 세상 속에서 사는 이상 능력껏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부질 없을 수도 있고… 방식이 중요할까. 그것이 외적으로 향하던 내적으로 향하던 행위의 주체와 노력은 위대하다.

공자 가라사대, “군자는 말이 행함보다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지식 사회, 지식 산업, 정보화 시대… 풍족함에 있어서 어느 시대보다 꿀릴 것이 없다지만, 지성의 빈곤함은 감출 수가 없다. 옳은 것을 행하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지성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강하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움직여라. 아는 것을 행하라.

이 책의 반은 저자의 기행문이다. 공자의 발걸음을 2000년이 지난 후에 밟아 보는 것인데, 사실 쓰러진 비석 또는 반듯한 유적지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행담을 듣는 것이 즐거운 것은 책이 줄 수 없는 무엇인가를 전해주기 때문인데, 교통편과 숙박시설에 대한 얘기들만 있는 것 같아 감흥이 떨어진다. 그것보다는 이 책 곳곳에 있는 공자의 행적을 그린 그림들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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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0-04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등학교 때 도덕, 윤리 책에서 배운 것 이외에는 아는게 없는지라, 많은 도움이 된 듯 합니다. 숨은아이님 잘 읽었습니다. ^^

2005-10-04 0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5-10-04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의 해석, 인상 깊습니다.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근데 저자 기행문의 분량은 절반보다 많이 적습니다. 양념 노릇 정도 하는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