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 한 마리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막은들…"
  [기고]민중과 함께할 '또다른 조승수'를 기다리며
  2005-09-30 오전 10:19:24
  지난 29일 오후 3시쯤 필자는 자동차를 운전하던 중에 한 신문사 정치부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조승수만 죽고 다 살아났다. 한 마디 해 달라."
  
  그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필자를 지배했던 감정이 '적의(敵意)'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어 불타오르는 '전의(戰意)'같은, 나이에도 어울리지 않고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는 개념이 떠올랐다는 사실도 숨기고 싶지 않다.
  
  대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해서 그것을 존중할 생각은 없다. 형평성을 강조하며 판결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이해는 가지만 적절한 비판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른 의원들의 판결 내용과 무관하게 조승수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만일 형평성이 결여됐다는 주장이 민주노동당의 항변대로 '진보정치에 대한 보수 세력의 탄압'이라는 입장과 연결된 것이라면 이 주장은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질문의 방식이 "왜 우리만?"이 아니라 "왜 진보정당만?"으로 될 때 그렇다는 것인데,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얼만 전까지만 해도 '진보' '좌파'를 둘러싼 수많은 의미와 행위는 '유죄'이지 않았던가. 물론 지금도 다 무죄는 아니다.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정확하게 말하면 보수정당에 관한 한 형평성을 유지했다. 다 살려주는 쪽으로. 그러나 진보정당에 대해서는 그럴 용의가 없었다. 따라서 진보정당 탄압이라는 시각으로 이 문제를 본다면 '형평성'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형평성 자체가 존재하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더 긴요하다. 민주노동당의 공식 입장 발표에서 "대법원 스스로가 보수로 회귀"하고 있다고 말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보수 아닌 다른 입장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회귀가 가능하다는 얘기인가. 보다 냉정하고 계급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선출된 권력인 입법부는 왼쪽 날개가 조금씩 돋아나고 있다. 그러나 시험으로 뽑힌 권력인 사법부 엘리트들의 폐쇄회로는 아직 오른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의 재산권 수호를 위해 노력하는 '전투적인 사법부'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에 대해서는 냉정하다. 진보정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질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이런 우경화 현상은 교정돼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견지하고 있는 정치적 다원주의 원칙과 정신이 온전하게 실현되는 과정과 '사법부를 지금보다 왼쪽으로 구부려야 하는' 우리 시대의 과제는 맞물리면서 해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추진하는 원천적 힘은 민중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의 많은 당원들과 지지자들은 지금 울분과 허탈에 빠져 있을 것이다.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그 분노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총선의 감격이 추억과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것처럼 울분도 그 감정 상태로는 오래가지 않는다. 감격이나 울분 같은 어쩔 수 없는 감정들이 오래 가는 에너지로 바뀌기 위해서는 성찰적 자세가 필요하다. 술 한 잔에 육두문자를 안주로 '화'를 식히고 과제와 교훈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진보정당 진출을 가로막는 강력한 상대로 사법부가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과거 정보기관이나 국가보안법 같은 장치들과 함께 선거법 조항의 애매함을 무기로 사법부의 해석이 용인되는 영역이 진보정당을 가둬놓는 곳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보의 신념으로 넘어설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니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가치체계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려면, 자신감과 열린 자세를 가지고 외부와 소통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 판결이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이,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 혹시 자신들의 잘못은 없었는지 따져보는 일을 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만약 잘못이 있었다면 그게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챙겨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억울하고 분하다 해도 똑같은 일을 저지를 수는 없는 게 민주노동당의 현재 형편 아닌가.
  
  스스로를 탄압받는 자나 피해자로 규정하지 말고 현실 사회의 모순을 돌파하는 가장 믿음직한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지금 힘은 비록 부족하지만 말이다. 민중들은 징징대는 곳보다 시련을 겪더라도 실력을 가지고 당차게 뚫고 나가는 데에 희망과 지지를 보낸다. 아직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민주노동당의 잘못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현재의 시련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또 다른 조승수'를 탄생시키는 게 중요하다. 현실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것은 아주 중요한 과제가 됐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법원이 미워서가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좋아야 지지해준다. 대법원이 얼마나 나쁜 판결을 내렸는가보다-이것도 필요하겠지만- 조승수가 어떤 활동을 해 왔나, 민주노동당이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나 하는 것으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조승수 의원은 지난 총선 당선 직후 이런 말을 했다. "저 혼자 국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지지해주고 민주노동당에 희망을 건 수많은 민중들과 함께 국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당시 감동의 물결에 휩쓸려 있던 민주노동당의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조승수의 이 말은 결코 정치적 수사로 들리지 않았다. 필자는 그가 어깨 위에 기꺼이 지고자 했던 짐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조승수 의원은 어제 의원직이 박탈된 뒤 이런 말을 했다. "민주노동당 의원 10명에게 붙여졌던 '10인의 전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원직 상실로 제가 국회를 떠나게 되고 9명의 의원이 앞으로 힘겹게 의정활동을 해야 하지만 다음 달 재선거를 통해 '또 다른 조승수', 새로운 전사가 보충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이 말은 결코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조승수의 짐은 이제 또 다른 조승수를 만들어내는 것이 되고 말았지만.
  
  사족 한마디. 필자는 대법원 판결 소식을 듣고 담당 대법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이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고유명사 대신 일반명사 하나를 생각해냈다. '사마귀'.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고 할 때의 그 사마귀 말이다.
   
 
  이광호/전 <진보정치>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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