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돈 없으면 책도 볼 수 없다? 2005.09.14


2005년 9월 13일 (화) 13:50  미디어다음
"한국은 돈 없으면 책도 못보는 나라"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 도정일 상임대표 인터뷰
떨어지는 접근성, 낙후된 시설, 빈약한 콘텐츠..한국 공공도서관 문제

미디어다음 / 오미정 기자



도서관 문화, 나아가야 할 길






한국 공공도서관 수준이 열악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무르는 공공도서관 수나 1인당 장서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미 만들어져 있는 공공도서관마저 제 기능을 하는 곳이 적다.

기적의 도서관 건립 운동, 북스타트 운동 등 여러 독서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 도정일 상임대표(경희대 영문과 교수)는 12일 미디어다음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은 '돈 없으면 책도 못 보는 나라'"라며 한국의 공공도서관 문제를 일목요연하게 지적했다.

그는 우선 "떨어지는 접근성, 낙후된 시설, 빈약한 도서관 콘텐츠, 나쁜 서비스, 부족한 인력 등이 문제"라며 "도서관 건립과 운영에 정부가 더 많은 재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 대열 합류를 위해 잰걸음을 걷는 한국이, 더 이상 경제 논리에 밀려 '돈 남으면 하나 지어주지'식 선심 행정으로 공공도서관 확충 문제에 접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모아둔 '저장고'가 아니라 지속적인 사회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사회발전의 근본이 인간의 발전이고 이런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문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의 중심이 되는 도서관은 중요한 부가가치 생산의 기지입니다. 도서관은 단순한 복지시설이 아니라 창조와 생산의 중심지인 것입니다."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 도정일 상임대표 ⓒ미디어다음
그는 또 도서관이 훌륭한 '육아지원시설'이라고 말한다. 그는 "출산률이 세계 최저라고 아우성만 칠 것이 아니라 사회가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분담해야 한다"며 "도서관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훌륭한 양육시설"이라고 했다.

도서관은 어린이들에게 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중요한 공간이다. 그는 도서관이 평생교육을 실현시키는 '시민의 대학'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평생 교육의 실현에 도서관만큼 중요한 공간이 없다"며 "시민 각자가 원하는 지식을 얻고 배움을 실현하는 장소가 도서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 교수는 오는 11월 국민의 '문화적 권리'를 대내외에 천명하는 '문화 헌장'을 공표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모든 국민이 문화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가질 권리, 문화유산을 향유할 권리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이를 통해 그는, 존재한 적이 없어 박탈돼 왔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문화적 권리를 당당히 주장해야 할 국민의 기본권으로 편입시킬 생각이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도서관 수, 컨텐츠, 인력 부족..정책과 인식의 부재..공공 도서관 문제 심각
"산 중턱에 지어진 도서관.. 등산하는 기분으로 가야"


-한국 공공도서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도서관의 수가 일단 너무 적다. 도서관 컨텐츠, 인력 등도 부족하다. 정책도 부재하고 도서관 서비스에 대한 인식도 떨어진다. 일단 지어진 도서관조차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시설도 낙후돼 있다. 나쁜 도서관 서비스도 문제다.

이같은 문제들은 물론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의 역사가 워낙 짧아서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왕조 유지와 엘리트 교육을 위해 관료와 양반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 도서관 들어온 것은 식민지배시대 때 일이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도 우리 정부에게는 도서관을 지을 여유가 없었다. 이 때문에 공공도서관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지난 50년간 우리나라의 도서관 정책이라는 것은 사실 없었다고 보는 게 옳을 정도다. '돈이 남으면 하나쯤 지어주겠다'는 생각을 바꾸고 도서관에 투자해야한다.

그 책임은 정부와 자치단체에 있다. 충분한 예산을 배정해 도서관을 더 많이 짓고 필요한 인력을 공급해야 한다. 콘텐츠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자치단체들이 도서관의 중요성을 더 모른다는 것이다. 중앙 정부가 자치단체에 예산을 일괄적으로 지원하다 보니 도무지 재원을 도서 구입 등에 쓰지 않는다. 몇몇 자치단체의 경우만 빼고는 아직도 도서관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모자라다. 중앙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우리나라에서는 도서관을 산 밑에 둔다. 등산하는 기분으로 가야한다는 말이다. 도서관은 주민 생활의 중심이 돼야 하는데 우리나라 도서관은 그렇지 못하다. 직장인이 점심시간에, 혹은 출퇴근 할 때 잠깐 들를 수 있을 정도로 지역 사회의 중심에 위치해야 한다.

출산율 세계 최저의 한국..도서관은 아이들을 위한 양육시설이기도"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 도정일 상임대표 ⓒ미디어다음

-일부 도서관 사서들의 불친절을 비난하는 이용자들이 있다. 전문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전문사서의 인력을 공급하는 곳은 대학의 문헌정보학과다. 그런데 문헌정보학과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빈약하다. 대학에서 도서 분류하는 것만 배웠다고 전문 사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서 정보를 제공하는 사서들의 능력이 아쉽다. 외국의 경우 사서들은 전부 자기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어서 정보를 요청하면 주제에 맞는 자료를 바로 찾아준다.

공공도서관에 근무하는 일부 사서들은 도서관 서비스에 대해 아이디어를 낼 의무가 없기 때문에 그냥 편안하게만 지낸다. 사람들 찾아오면 저승사자처럼 앉아만 있는 것이다.

-한국의 도서관은 정보를 얻는 곳이라기보다 시험 때 공부를 하러가는 독서실 개념이 강한데 도서관은 어떤 공간이 돼야 하나.

우리나라 문화 시설 정책의 특징은 건물 지어놓고 인원 보내면 끝이라는 것이다. 문화 관련 시설을 으리으리하게 지어서 일반인들이 접근도 못하게 하는 일도 있다. 비싼 자제를 사용해 예산은 많이 타낸다.

도서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도서관 서비스 부분은 거의 빵점이라 말해야 할 정도다.

그러니까 다들 도서관에 공부만 하러 가는 것 아닌가. 도서관 기능이 '독서실'로 퇴락하게 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한 몫을 했다.

도서관은 주민이 마치 자기 서재인 것처럼 늘 찾아와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업무 말고도 각종 문화 관련 행사 등을 펼쳐야 한다. 예를 들면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 교실, 독서 교실 같은 것이다.

도서관에 도서 요청을 하면 집으로 도서관에서 보내주기도 하고 필요한 부분을 복사해주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서비스도 제공해야한다.

정부는 현재 '평생교육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평생교육을 위해선 도서관만큼 중요한 장소가 없다. 도서관은 주민들의 '평생교육 대학'이 돼야 한다.

도서관 또한 육아지원시설이기도 하다. 출산율에 떨어진다고 아우성만 칠 것이 아니라 사회가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분담해야 한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낳는 것보다 키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은 어린이들의 훌륭한 양육시설이 된다.

정보사회는 모든 시민이 정보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IT 분야에 많은 투자를 했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기본적으로 확충했어야 할 공간이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은 단순한 복지시설이 아니라 '창조와 생산의 기지'다. 굉장히 중요한 부가가치 생산의 기지인 것이다.

"한국은 돈 없으면 책도 못 보는 나라"
"11월 문화 헌장 발표, 국민의 기본권인 문화 권리 대내외에 알릴 것"


-인터넷이 도서관을 대체할 수는 없나.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제공은 잘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접근하고 이를 통해 누릴 수 있는 정보는 한정돼 있다.

인터넷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창조적인 정보를 도서관이 제공한다. 책은 전문적인 지식 뿐 아니라 정신생활을 위한 자료들까지도 준다. 도서관은 '정보평등사회'의 실현을 위한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은 돈 없으면 책도 못 보는 나라다. 공공도서관은 이제 돈이 없어서 책을 못 보는 일은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정보국가의 의무다.

-11월 공표하기로 한 '문화 헌장'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나.

시민의 문화적 권리 부분에 역점을 뒀다. 문화적 권리는 기본적인 인권이다. 문화 향유를 시민의 권리라고 천명한 것이 문화헌장이다.

여기에는 필요로 하는 모든 자료에 평등하게 접근할 권리, 정보를 사용할 권리, 평생교육을 받을 권리 등 시민이 당연히 가져야 할 문화적 권리들을 담았다.

사회발전의 근본은 인간 발전이다. 문화는 인간의 발전을 돕는다. 문화는 결국 사회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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