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2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봄이 와도 새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들판과 숲, 습지에는 오직 기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사과나무에 꽃은 피었지만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이 없어 수분이 일어나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했다. 예전에는 그토록 아름답던 길가에는 마치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갈색으로 시든 식물만이 서 있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이 떠나간 그 자리엔 고요함만이 자리했다. 죽음의 그림자는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우리 곁에 슬그머니 다가와 있으며, 상상 속의 이 비극은 너무나도 쉽게 진짜 현실이 되어 우리 눈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새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았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이렇게 시작한다.
케이트 윌헬름의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는 ‘침묵의 봄’ 이후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새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 인간은 번식이 중단되었다. 봄(생명)을 알리는 속삭임이 사라진 것이다.

이 책들이 출판하던 시기에 대중의 심리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홀로코스트의 기억들이다. 그리고 전쟁 이후의 냉전, 핵무기, 방사능, 화학물질에 의한 오염 등 60~70년대에 벌어진 일들은 심각한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 왔을 것이다. 포스트홀로코스트를 다룬 이 작품의 태생적 배경은 사회적 불안과 대중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SF 소설 또한 현실문제와 인간 사회에 대한 고민이 한껏 묻어 있음을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다.

생명, 생명이란 무엇이고 그것의 가치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생명공학이 사회적 이슈가 된 요즘 시대의 물음이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귀는 닫혀 있다. 철학 없는 과학과 자본 사회가 만들어 낸 ‘비이성적’인 카니발을 쫓아 스스로에게 종속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로지 배아복제, 줄기 세포, 유전자 조작들이 가져올 혜택들이 일종의 광맥처럼 비춰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의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기술의 진화는 언제나 편리함 이상의 희생을 치렀다는 역사적 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인간 복제를 다룬다. 번식을 하지 못하게 된 인류 중 극소수의 사람들이 인간 복제를 통하여 종을 유지해 나간다. 하나를 복제해 농구팀 정도 만들고, 야구팀 정도를 만들다 보니 분대단위 수준까지 마구 찍어낸다. 자연과 격리된 그들의 생존력은 마을을 벗어나지 못한다. 클론들은 독립된 활동을 할 수 없는 나약한 군집일 뿐이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만으로 자기 복제만을 하다가 소멸될 미래만을 기다리는….

개체성의 상실, 마치 개미마냥 노동과 복제로 하루 하루를 보내는 그들의 일상은 그로테스크하다. 클론 생산이 가능한 ‘선택받은 여성’은 복사기 뚜껑처럼 쉼 없이 다리를 열고 닫는다. 난교와 기계적인 결합, 쌍쌍바처럼 늘 붙어서 다니는 클론들의 의식에서는 생명을 느낄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인류의 모습 3대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인류, 클론 1세대, 클론 2세대. 이 책 소개에 보면 원래 한편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하나씩 추가 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속도감 있게 읽혀진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각 세대에서 피어난 아슬아슬하고 비극적인 사랑, 운명적인 대물림이 책을 아름답게 장식한다는 점이다.

인간과 과학, 개체와 군집, 인간성과 기계성의 배치와 긴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희망적인 결말로 생명과 인간의 본성을 담아낸 작가의 시선을 통해서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는 작업은 흥미롭고도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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