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시대 '문화가 짧아진다'
| 글 | 김상훈, 김두영/ 동아일보 기자ㆍsanhkim@donga.com |
 

《‘책 6쪽에 100원, 1분짜리 TV 프로그램, 7분짜리 동영상 강의….’ 인터넷과 휴대전화,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이 문화 소비 행태를 변화시키고 있다.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TV를 볼 때 한번에 투자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문화산업도 그에 맞게 ‘짧아진’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짧음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생각의 깊이가 얕아진다’는 걱정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다양한 문화를 접한다’는 희망이 교차하고 있다.

필요한 부분만 골라 본다

미국 인터넷서점 아마존은 최근 인터넷으로 약 50쪽 분량의 짧은 책을 0.49달러(약 500원)에 내려받도록 한 ‘아마존 쇼트(Amazon Short)’ 서비스를 시작했다. 단편소설이나 짧은 에세이를 개인용 컴퓨터(PC)에 내려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국내 전자책 기업 북토피아도 종이 대신 PC와 개인휴대단말기(PDA), 휴대전화로 읽는 전자책 가운데 A4용지 약 6쪽 분량의 연재소설을 50∼100원에 팔고 있다.

이런 서비스에 대해 책의 전체적인 의도를 읽지 못하고 단편적인 지식만 받아들이는 ‘토막 독서’를 조장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오재혁(吳在爀) 북토피아 사장은 “빠르게 다양한 견해의 지식을 얻어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이런 독서 방식이 더 어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짧아져야 눈길을 끈다

영상물도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02년 SK텔레콤이 휴대전화 동영상 서비스 실시를 앞두고 벌인 조사에서 소비자들이 휴대전화로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영상물의 길이는 ‘20분’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시작된 위성 DMB에서 증명됐다. 위성 DMB 전용채널 ‘채널블루’의 1∼10위 인기프로그램 가운데 7개는 10∼35분 길이의 프로그램이다. 1시간 이상의 ‘공중파 스타일’은 인기가 떨어진다.

채널블루에서는 ‘1미니트(minute)’라는 새로운 프로그램 실험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하루 36회 매 30분 간격으로 1분짜리 영상을 방송한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호응이 높아지자 회사 측은 ‘1미니트’ 10편을 10분간 보여 주는 ‘1min. 컬렉션’이라는 별도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동영상 강의도 짧아지는 추세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에게 보내는 동영상 e메일 ‘SERI CEO’의 경제 강좌는 1편이 7분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제작 지침’에 따라 만들어진다. 집중력을 갖고 강좌를 보는 시간이 최대 7분이라는 판단 때문. 현재 이 서비스는 연회비 120만 원을 내는 5000명의 유료회원을 유치했다.

우려와 희망 엇갈려

책과 영상, 강의 등이 짧아지는 현상에 대해 우려와 희망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우려하는 쪽은 기술이 지나치게 상업 논리로만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양은(金良恩) 사이버문화연구소장은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어떻게’ 다루느냐보다 이것을 이용해 ‘무엇을’ 배울 것인지 교육제도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문화산업 콘텐츠의 변화를 희망적으로 보는 쪽은 새로운 현상이 가져오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한양대 윤영민(尹永敏·정보사회학) 교수는 “종이책은 어느 정도 분량이 돼야 인쇄에 들어갈 수 있었고 강의도 사람이 모이고 시간이 주어져야만 가능했지만 디지털 기술은 이런 한계를 벗어나게 해 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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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7 0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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