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의 어슬픈 지적과 유시민의 비껴치기

유시민이 예의 또다시 뭉뚱그려 핵심을 비켜가는 코미디를 선보였다. 그는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나는 더 중요한 정치인 되고 싶지 않다"라는 글을 통하여 곡학아세와 '자다가 봉창 두들기기'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는 형식적으로는 최장집과 정혜신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글의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그가 자신의 글 전반에 걸쳐서 의도하는 바는 노무현에게 저작권이 있는 희한한 연정론에 대한 '죽어가는 불씨지피기'에 다름이 아니다. 오직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노무현식의 흘러간 옛노래를 다시 유시민 버젼으로 편곡하여 노빠들의 시장에 리메이크 상품으로 재출시했다고 비유할 수가 있겠다.

먼저 그의 정혜신의 글에 대한 반론은 장황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굳이 따지고 보면 유시민의 정혜신 반론글에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것은 전적으로 정혜신의 탓이 크다. 바로 정혜신의 원글은 그 내용이 유시민에 대한 '~카더라'식 인상비평이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유시민 역시 딱히 무엇을 가지고 반론을 해야할 지 막막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시민은 마지못해 '어머머, 난 사심이 없어요'라는 방식으로 완곡한 손사래를 치기에 바쁠 뿐이다.

사실 유시민과 같은 지적 승부욕이 충만한 사람에게 '당신은 똑똑한데 싸가지는 없어'라고 말해서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보라. 당장에 유시민은 '그래, 난 싸가지가 바가지인 놈이예요. 그리고 그 못된 싸가지가 전적으로 내 탓만은 아니예요. 오히려 그것은 나의 냉소를 외화시키는 방식일 뿐이랍니다. 제발 나의 싸가지 없음에 주목하지 말고, 나의 냉소가 가지는 원천에 주목해 주세요.'라고 나자빠져 버린다. 바로 정혜신은 유시민을 어설프게 건들다가 본전도 못건지고 헛다리만 긁은 셈이다.

유시민의 골때리는 논리와 독선

유시민은 이어서 최근의 대연정 정국을 "대통령이 기득권을 내던지고 벌이는 선도투쟁"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심없는 "대통령에게 훈계부터 해대는 일부" 지식인들에게 비수를 겨눈다. 여기서 우선 우리들은 유시민의 인식 자체를 통채로 비난하거나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가 규정하고 있는 상황인식의 적절성과 소위 "대통령에게 훈계부터 해대는" 대표적 지식인인 최장집의 문제제기가 가지는 타당성을 따지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유시민은 세간의 노무현 선도투쟁론을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아무도 하지 않자 대통령이 나선 것일 뿐"이라고 진단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천하의 유시민마저도 그동안 "대통령의 기득권을 버리고...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모르는 채 방치한 사람이었노라고 자기반성을 하는 셈이다. 아니 이것이 어찌된 일일까? 유시민을 필두로 대통령의 의중과 행위를 앞장서 해석하고 대통령과 완벽하게 '코드가 일치했던' 그 수많은 지지자들은 대체 그동안 무엇을 했다는 말일까? 굳이 대통령이 선도투쟁까지 불사하며 선봉장이 되어 눈터지게 싸울 수 밖에 없도록 만든 희극적인 현실 앞에서 우리는 퇴행성 노빠증후군의 한 측면인 '노무현이 결심해야 우리는 따라한다'는 피동성을 재확인한다.  

아무튼 유시민은 꽤나 다급했나 보다. 그는 80년대의 '선도투쟁'이 역사를 바꾼 동력이었으며, 그들의 '선도투쟁'이 없었다면 양김도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면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똑똑한" 유시민은 자신의 전매특허인 지조때로 비유를 또 늘어놓기 시작한다. 유시민에 따르면 80년대의 '선도투쟁'과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에 "기득권을 내던진" 대통령의 반개혁적 몰역사성이 같은 용어로 등치가 되는 것이다. 불과 며칠 전에 생방송에서 한 시민의 문제제기를 '부적절한 비유와 논점없는 말꼬리잡기'라고 평가절하하던 유시민이 이래도 되는 것일까? 유시민처럼 이런 괴상한 용어사용에 무감각해진다면, 막말로 조갑제나 김용갑의 빨갱이쑈마저 "선도투쟁"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도 없어지는 셈이다. 참으로 희한한 "선도투쟁"이다.

하지만 "천하의 유시민"은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직 중요한 것은 "해결하려는 문제가 정말로 국가적 중대성을 가진 것이"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고서는 그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대통령이 고독한 "선도투쟁"을 하는 것이며, 그 "기득권마저 내던진" 대통령의 진실성을 몰라주고 무려 "훈계" 씩이나 해대는 최장집류들만 골치거리일 뿐이다. 더 나아가 그는 최장집류들에게 "단죄하고 비난하고 훈계하기 전에 먼저 실사구시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충분히 토론해 보자"고 제안한다. 막말로 왜 최장집류들만 자신의 주장을 말하기 이전에 "천하의 유시민"과 "토론"을 거쳐야 하고, "천하의 유시민"과 대통령은 "토론"이라는 형식에 침을 뱉으면서 막바로 "선도투쟁"에 돌입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동안 집권 절반이 지나도록 노무현과 "천하의 유시민"은 최장집류들과 진지한 "토론"을 제대로 단 한 번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자신들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남에게만 주문하는 고약한 버릇은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지 않았는가.

정작 손가락에 얽매어 있는 사람은 유시민이다

유시민은 계속해서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1노 3김이 합의해 만든 '1987년 체제'를 종식하고 한국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필수적인 정치제도의 변경을 이루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굳이 그가 "비난받고 상처받는다고 해도 나는 이 목표를 향해서 간"다는 비장함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매우 아름답고 유의미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유시민을 비롯하여 많은 전사들이 "앙시앙 레짐을 유지하는 데 동원되는 사고방식과 논리적으로 싸우는 역할"에 충실하기를 바라고, 이 땅의 민주주의와 진보를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나 자신이 처해있는 조건과 공간에서 이를 위하여 최대한 노력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유시민은 계속해서 딴청을 부린다. 그가 "지금 이 순간 달리 선택할 여지는 없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의 대연정론"에 대하여 그가 무엇을 말했다는 말일까? 도무지 "대통령의 대연정론"과 관련하여 진보개혁진영의 문제제기에 접근하는 어떠한 답변도 말하지 않은 채, 유시민이 계속하여 구사한 논지는 오직 '기득권을 내던지는 대통령에게 감히 훈계하지 말라'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던가?

유시민이 바로 이런 것을 "토론"이라고 믿었다면, 아니 더 나아가 '나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는데, 왜 당신들은 훈계부터 하려고 그러느냐?'는 것을 "토론"이라고 생각한다면 비극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런 유시민을 "천하의 유시민"이라고 상찬하는 대한민국의 논리지수와 감성지수는 엉터리라고 단언할 수 밖에 없다. 막말로 표면적으로는 대통령의 대연정이 어떻게 지역주의를 극복할 대안이라는 것인지, 나아가 폭을 좁혀서 선거구제 개편이 대연정의 전제조건으로 어떠한 타당성과 당위성을 갖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반론에 대한 그의 답변은 여전히 지극히 미흡하다. 어쩌면 정작 달을 쳐다보지 못하고 손가락에 집착하는 것은 유시민이 아니었던가? 아니면 최장집의 지적대로 애초부터 '달'은 없었던 것은 아닐까?

보수정치판의 눈으로 바라보는 유시민의 지역주의

이제 본격적으로 눈터지는 계가싸움을 해보자. 바로 유시민이 최장집의 논지에 대해 행사한 반론부분이 그 대상이다. 우선 유시민이 최장집의 텍스트를 요약한 부분을 보면 그가 "싸가지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똑똑한"것은 맞는 말인 것만 같다. 최장집의 글을 못구해 본 사람들을 배려하는 취지에 국한한다면, 유시민의 이해도는 매우 훌륭하며 써머리 역시 잘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유시민이 "지금 이 순간 달리 선택할 여지는 없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의 대연정론과 직접 연관이 있는 부분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쪼록 유시민은 기회가 닿는대로 전술한 그 부분에 대한 의견이나 "토론"을 회피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유시민은 최장집의 텍스트를 7가지 분야로 분석하며 제 부분에 대한 인식의 공유를 언급하고, 5)~7)에 대한 반론에 집중하고 있다. 우선 편의상 유시민이 정리한 반론대상을 먼저 공유하고, 이후에 유시민의 반론에 대한 나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온당한 순서이겠다.


다음은 최장집의 텍스트에 대한 유시민의 요약 정리 부분이며, 나아가 이는 유시민의 반론대상이 된다.

5)지역주의: 한국정치가 가진 문제의 궁극적 원인을 지역주의라고 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권정부이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태도는, 현실로 존재하는 사회갈등과 균열요인을 제대로 대면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한국의 지역주의는 권위주의 지배의 한 산물로서 반호남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바 민주화의 진전과 더불어, 특히 김대중 정부의 집권과 더불어 괄목할 만큼 완화되었다.

지역주의는 그 자체가 독자적이고 지배적인 균열이 아니라 권위주의의 잔여 범주로서 정당체제의 이념적 협애성과 사회적 기반의 약함, 시민사회의 강한 보수 헤게모니 등으로 인해 작위적으로 동원될 수 있었고 영향력을 가졌던 일종의 종속변수였다. 문제는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역주의를 만들어내고 유지시키는 현재와 같은 정치적 대표체제를, 보다 민주화하고 갈등의 이념적·계층적 기반을 넓히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6)선거제도 변경: 지역갈등 극복을 정치개혁의 최우선 의제로 삼고 선거제도를 바꾸게 된다면, 기존 거대정당들은 규모의 이점을 나눠갖게 되고, 보수 독점적 양당체제는 강화되며 오히려 약화되고 있는 지역갈등구조를 다시 불러들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사회의 이익계층들이 대표될 수 있는 보다 민주적 제도개혁의 가능성은 사전에 봉쇄될 것이다.

7)결론: 오늘의 시점에서 지역문제가 정권의 운명을 걸고 추구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뭔가 다른 의도를 가진 정치적 알리바이일 가능성이 크다.


유시민은 최장집의 5)에 대하여 "이런 논리를 원인과 결과, 또는 제도적 환경과 그 환경의 산물을 혼동한 데서 나온 것으로" 진단한다. 그리고 그는 구체적으로 최장집류에게 "과연 김대중 정부 이후 지역주의는 약화되어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정치의 현장에서 느끼는 지역구도는 여전히 철벽처럼 강고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은 지역주의에 전적으로 또는 크게 의존하는 정당이며, 열린우리당 내부에도 그와 같은 경향성은 뿌리 깊게 존재한다."고 자문자답을 한다.

우선 현실정치권의 영역에서 지역주의는 "여전히 철벽처럼 강고"할 것이다. 그러나 입은 비툴어졌어도 말은 바로하랬다고, 현실정치의 지역주의는 엄밀하게 분석하면 지역 유권자들의 투표성향과 이를 핑계로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는 현실정치인들의 보신주의가 서로 복합적으로 뒤엉킨 문제이다. 당장 대통령과 유시민이 열망하는 중대선거구제 역시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부터 찬성받지 못하는 경향은 이를 뚜렷이 반증한다.

문제는 이런 것이다. 유시민이 지적했듯 구체적인 개인의 차이를 떠나서, 제도 자체를 변화시키는데(사실 그런 점에서 열린우리당 역시 기득권 정당의 원리와 구조를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게 답습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기득권적 이해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에둘러 피해갈 생각은 말라. 어쩌면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다는 "가장 중요한 과제"마저 내부의 덫에 빠져서 외부와의 "선도투쟁"으로 떠밀리는 기괴한 현상의 일차적인 원인제공자이자 모순은 자신에게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것도 불과 1년 남짓 전에 바로 그것을 하겠다고 울며 불며 유권자들에게 협박을 마다않던 열린우리당이 바로 자신이란 말이다.

그러나 최장집에 대한 유시민의 반론은 절반만 수긍할 수 있다. 오히려 최장집은 현실정치의 영역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삶과 사회적 인식의 정도를 포함하는 광의의 지점에서 논의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과연 유시민은 개인의 참정행위를 제외한 여타의 다른 영역에 있어서도 지역주의가 시간을 다투는 제일의 관심사로 비춰지는 것일까? 만약 유시민의 두뇌가 이를 긍정한다면, 그는 지나치게 '현실정치 강박증'에 빠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어쩌면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열린우리당 기득권자들이 지역주의적 경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연정의 당위로 작동될 이유는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유시민이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보수정치인들의 행태에만 집착하는 한, 점차 한국사회의 패러다임이 계층적 이해와 다면적인 문제제기와 수용과정으로 변화하는 지점을 인식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지역주의와 정당체제, 그 끝없는 '닭-알논쟁'

이제 더 나아가 유시민은 난데없는 '닭-알논쟁'을 시도한다. 유시민은 최장집의 6)논지를 "정당체제의 이념적 협애성이 지역주의의 위력을 키운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적 정당구도와 거대정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선거제도가 한국 정당체제를 보수일색의 협애한 공간에 묶어둔 원인이요, 제도적 환경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지 않은가?"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최장집의 견해를 "원인을 그대로 둔 채, 어떤 알 수 없는 신묘한 방법으로 결과를 개선함으로써 원인을 없애라고 하는 도착된 논리"로 진단한다.

그러나 유시민의 입장은 본질적이고 순환론적 문제를 굳이 인과관계로 존치시키려는 억지에 다름이 아니다. 어쩌면 최장집의 문제제기는 유시민의 반론보다 훨씬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며, 다만 유시민 논지의 유의미성은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에 국한된 알리바이로는 손색이 없는 논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역주의와 정당체제에 대한 최장집의 텍스트와 유시민의 반론은 전략과 전술의 쌍두체제로 결합될 수 있는 성질이라는 말이다.

최장집이 갈파하듯, 한국 정당체제의 보수일색 "이념적 편애성" 속에서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조건과 기준은 지극히 단순하고 본성적일 수 밖에 없다. 바로 지역 보스와 그가 소속되고 움직이는 정당이 우선적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념과 정책의 차별성이 거의 전무한(대통령 발언 인용)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되돌아 보라. 또한 앞서 유시민이 개탄했던 여타 지역주의 정당들을 보라. 도대체 비슷한 상품을 좌판에 벌여놓고 서로 사투리만 다른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막말로 나부터서도 월미도 횟집타운에 가면 더 익숙한 지명이 상호에 걸려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말이다.

옹졸한, 너무도 옹졸한...

이제 급기야 "천하의 유시민"이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물론 각론이라 하더라도, 그는 "선거구제 변경이 보수 독점적 양당 체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최교수의 주장은 대통령이 제안한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선거구제 변경'의 내용을 모르고 한 말"이라고 우긴다. 나아가 최장집의 글을 인용한 <한겨레신문>마저 "논리적 도착과 사실관계의 오인"을 "무비판적으로 인용 보도"했다는 힐난을 듣는다.

유시민에 의하면 선거구제의 개편은 "보수 독점적 양당 체제의 강화"가 아닌 "민주노동당 40석"을 가능케 하는 좋은 제안이란다. 평소부터 진보정당의 성장과 집권을 위한 노력에 헌신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던(?) 유시민의 선의에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로 감명을 받던 터에, 이렇게 세세하게 당의 의석수까지 챙겨주는 자상함을 대하니 오금이 저릴 지경이다.

물론 유시민 역시 민주노동당의 당론인 <독일식 정당명부제>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인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유시민이 천작하듯, 유권자의 지지율과 의지가 온전하게 입법기관에 반영되는 합리적인 구조를 갖추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이는 민주노동당이 "40석"을 갖든 10석을 갖든, 아니 100석을 갖는 지의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말이다. 알아듣겠는가?

이제 그러면 어떠해야 하는가? 유시민도 동의하다시피 오차율이 가장 작은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러나 또한 유시민이 동의하다시피, 정치 기득권자들의 지역주의를 핑계로 한 보신주의 때문에 정답을 향해 직진하기에는 난망하다. 그렇다면 차선은 무엇인가? 지역과 비례를 동수로 하는 '중대선거구제-순수 정당명부제'이다. 하지만 차선 역시 열린우리당 내부의 지역주의자들 때문에 난망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마지노선은 지역과 비례를 동수로 하는 '소선거구제-권역별 정당명부제'인가? 아, 솔직히 머리가 아프다.

국회의 정개특위는 바로 이런 것을 협의하고 조정하라고 만든 기구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열린우리당은 무엇을 했는가? 또한 전임 국회 정개특위 열린우리당 간사였다는 유시민은 어떤 노력을 했으며 어떤 내용을 담아 냈는가? 그러고도 지금에 와서 이를 대연정의 전제조건이니 하는 것은 낯부끄럽지 않은가 말이다.

이제 유시민은 회피하면 안된다. 난데없이 "앙시앙 레짐"을 운운하며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의 사이비 개혁의 종착역에서 진흙탕 싸움을 주문하지 말란 말이다. 그러나 유시민은 예의 '속죄운동' 혹은 '뒤집어씌우기'에 돌입한다. 그에 따르면 한나라당도 열린우리당도 유시민도 최장집도 민주노동당도 모두 '구세대의 후예들'이란다. 잘만하면 보수일색의 정치판에서 한바탕 눈물나는 <내탓이오 부흥성회>가 열릴 판이다. 그리고 이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털어서 먼지 안나는...'이라고 운운하며 똥묻은 개와 재묻은 개를 구분할 셈인가?

직진이 두려운 사람들, 그들이 바로 "앙시앙 레짐의 후예들"이다.

 

류철원님의 다른 글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 하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