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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틴 스콜세지 Martin Scorsese 제작: 1978, 미국, 115분
저항, 혁명, 반문화, 러브 제너레이션, 젊음, 그리고 록 음악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단어들이다.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노래하던 밥 딜런이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블루스, 나아가 록을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젊은이들의 저항의 불꽃은 절정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드스탁을 지나 롤링 스톤즈가 “쉴 곳을 달라(Gimme Shelter)"고 외칠 때 열기는 과도한 절정에 다달았다. ‘더 밴드’는 이 불꽃을 지피기 시작할 때부터 화려하게 사그라지던 순간까지 언제나 중심에 있던 이들이다. 이들이 16년간의 순회공연에 지쳤다거나 멤버 각자의 몫을 탐하면서 밴드를 더 유지할 수 없다고 밝혔을 때, 이는 단순히 한 밴드의 소사가 아니라 러브 제너레이션의 불꽃이 이제 모두 꺼졌음을 선언한 것이다. 록 다큐멘터리의 전형이 되어버린 공연 실황을 역동적으로 담은 영상과 사이사이 삽입된 인터뷰라는 형식미 만으로 이 작품을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의 마지막은 곧 1960년대의 음악, 사회, 문화적 신세대가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어버렸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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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9월 04일 밤 10시 25분 ~ 12시 40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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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페르난도 트루에바 Fernanado Trueba 제작: 2005, 스페인, 133분
스페인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인 페르난도 트루에바의 사회 뮤지컬 <기적의 칸딜>은 브라질의 살바도르 데 바히아 라는 가난한 마을에서 촬영된 다큐멘터리이다. 이야기는 몇몇 뜻 맞는 개인들의 투쟁과 노력으로 전체 집단을 변화시키고 개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칸딜의 빈민가를 변화시키는 첫 번째 단계는 드럼이었다. 칼리노스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팀발라다 라는팀을 만듦으로써 음악을 통한 사회운동의 문을 연다. 쿠바 출신 피아니스트 베보 노인이 이 곳에서 도착하면서, 우리는 그의 눈과 귀를 통해 그곳의 인생 군상을 보고 듣는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 작품에서 그들은 거리에서건 학교에서건 음악과 함께 하며,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외로움은 음악으로 바뀌고,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음악이라는 유산은 삶의 환희를 지탱해주는 고귀한 선물이다. 베보의 내면 여행은 카니발의 폭발적인 음악과 관능과 축제로 끝맺는다. 칸딜을 여행하는 베보. 그리고, 삶과 진정성을 향한 여정. 우리는 예술을통해 인생이 즐거워 지는 섹시한 바히아로 향한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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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9월 04일 밤 8시 40분 ~ 10시 25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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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빔 벤더스 Wim Wenders 제작: 1999, 독일/미국/영국/프랑스/쿠바, 105분
역전의 용사들만이 만들 수 있는 고밀도 감동을 빔 벤더스 특유의 담백한 영상에 담아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작품 내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정열적인 보컬을 들려주던 이브라힘 페레르가 2005년 8월 5일 세상을 떠났다. 라이 쿠더에게 “이제는 죽고 싶지 않아졌다”며 다시 음악을 할 수 있음에 너무나 기뻐하던 소박한 거장, 밴드에서 가장 활력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무대를 휘젓던 타고난 엔터테이너였던 그 마저 콤파이, 루벤의 길을 따랐다. 이 작품이 감동적인 것은 아름답고 구슬픈 음악만큼이나 십 수년을 음악과 떠나서 살면서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던 멤버 하나 하나의 긍정적인 삶의 모습들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1950년대 최고의 스타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구두를 닦는 신세로 전락하고도 언제나 인생을 믿었던 페레르의 이야기는 절정이다. 73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발표했던 그의 솔로 앨범 커버처럼 그렇게 웃음을 머금고 저 쪽에서도 영원히 노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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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9월 04일 저녁 7시 ~ 8시 40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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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제작: 2003, 미국, 92분
블루스, 재즈, 부기우기, 랙타임, 소울... 우리는 음악에 이름을 붙인다. 그것은 단지 음악을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음악에 붙여진 이름들이 너무 커져서 음악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피아니스트 중에서 정형화 된 블루스 가계도에서 찾아지는 인물은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러나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작품을 “피아노 블루스”라고 명명했다. 그는 음악에 명명된 이름이 힘을 얻기 이전, 단지 음악이 음악으로 존재할 때의 모습을 찾고자 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블루스는 음악 형식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 혹은 삶 그 자체이다. 이는 블루스를 자신의 운명으로 알고 살아온 장인들의 손과 입을 통해 90분 내내 계속 증명된다. 감독의 생각을 강조한 넘쳐나는 사진과 자료들이 때론 과잉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미국식 피아노 연주의 매력은 이러한 아쉬움을 한참 날려버리고도 남는다.
**오늘 아침은 아예 EBS 홈페이지에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다. 좋은 다큐 프로 놓치지 않으려고. 음악 다큐 몇 편과 함께 가을을 맞는 것도 꽤나 근사할 것 같은데...... 9월 4일 저녁 일곱 시부터 새벽 이슥한 시간까지 연달아 방영되는 네 편의 음악 다큐를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보는 것도 좋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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