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늘빵 > 민주주의와 한국의 노동(1)(최장집)

 

민주주의와 한국의 노동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엄 기조발제문-


                                  최장집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고려대 정외과 교수)


두 개의 민주주의


민주화이후 한국민주주의가 퇴보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는 주기적으로 공정하게 시행되고 있으며,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시민참여의 공간은 크게 확대되었다.여당과 야당간의 관계가 역전되는 정당간의 정권교체, 이른바 “수평적 정권교체”도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광범한 엘리트 교체도 가능해졌다. 또한 지방자치의 발전과 더불어 권력의 공간적 분권화와 지방수준에서의 정치참여의 폭도 크게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는 그동안 정치에 있어 부패의 원천으로 작용한 정경유착을 완화함으로써 정치권에 있어 부패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렸다.아직도 문제가 크다면, 정당의 제도화 수준이 낮고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약하며, 그 결과 사회의 이익과 갈등을 잘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적어도 제도적 절차적 수준에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수준에서 무엇을 이루어냈느냐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기준에서 볼 때, 한국민주주의의 발전은 매우 초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저하게 퇴보했고 현재 계속 퇴보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말하자면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서로 반비례하여 발전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이후 한국사회는 특히 IMF 위기를 맞은 1998년을 기점으로 모든 총량지표들이 사회적 불평등화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시장자유화와 시장원리가 전사회적으로 확대되는 동안, 시장경쟁에서 승자가 독식하고 열패자들의 사회경제적 삶의 질이 악화되면서 사회해체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상위 5,10대기업의 기업이익 집중도로 보나 매출액 집중도로 보나, 경제에서 차지하는 재벌기업의 비중은 현저하게 증대했고, 이를 반영하듯 최근 년에 이르러 이들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이 시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자본공급, 생산성, 이윤율, 인력수급, 재정상태의 지표에서 나타나듯 재벌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훨씬 확대되었다.


지금 한국경제는 소수의 재벌대기업이 선도하는 세계적 수준에서의 경쟁하는 고기술, 자본집약적인 산업구조로 변화해가고 있는 동안, 피용자의 80% 이상을 흡수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대다수는 재벌기업과의 하도급관계를 통한 수직적 계열화로 인한 하청단가 인하압력에서부터 소득하락과 고용의 질에 이르기까지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이처럼 열악한 노동조건과 긴 노동시간, 저임금, 불안정한 고용조건으로 집약되는 중소기업의 상황은 한국사회에서 임금노동자가 향유하는 사회적 시민권의 양적, 질적 수준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


IMF위기 이후 급진적으로 진행된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 노동시장 내부분화가 한국산업의 중심부문인 재벌대기업 내부에서 인사이더-아웃사이더 간 새로운 차이를 창출하고, 그것이 오늘날 커다란 사회경제적 이슈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을 갖는다. 그 뿐 아니라 한국의 산업구조에 있어 커다란 취약성을 드러내는 영세 자영업의 비중이, 서구 선진국가 혹은 우리와 유사한 발전수준에 있는 나라와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크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IMF위기를 기준으로, 임금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다소나마 복원되어 왔던 것에 비해 자영업자들의 실질소득의 하락했다는 것은, 이 시기 한국사회에서 서민들의 생활수준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경제지표들은 지난날 권위주의 산업화 시절부터 악명 높았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이 여전히 한국노동자의 현실임을 보여준다.


노동운동의 상황이 민주주의의 조건하에서 극도로 취약해졌다는 사실만큼, 역설적인 것은 없다. 1980년대 말 최고를 기록한 18.6%로부터 최근 11% 안팎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해온 노조조직율은 민주주의하에서 쇠락해가는 한국노동운동의 위상을 간결하게 집약하고 있다. 더욱이 조직노동자의 구성비는 150여만 조직노동자 가운데서 300인 이상의 대기업사업장이 76%를 차지하고, 더욱이 5천인이상 재벌대기업사업장의 34개 노조가 44%를 차지한다(2003년 기준). 이 지표가 말하는 것은, 한국이 노동운동이 수출부문 재벌대기업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 중심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 노동운동의 궤적에서 볼 수 있듯이, 운동의 위기가 목전에 당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산층의 해체와 사회계층구조의 재편성,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6%에 이르는 360만 신용불량자의 양산, 빈곤층의 증가, 고용불안, 빈부격차의 증가, 저성장의 지속과 높은 청년실업률 등, 이 모든 문제는 한국사회 불평등화의 심화라는 현상을 창출하고 있다.격변에 가까운 이러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이 범죄, 살인, 가정해체, 자살률 등의 증가로 이어지는 사회해체 효과에 대해 여기서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건에서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OECD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낮은 비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역시 멕시코와 더불어 가장 낮은 사회복지 지출을 기록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나마 IMF위기 이후 사회안전망의 확대로 증가했던 사회보장 및 복지예산 비율은, 복지수요가 급증해온 사회적 현실과 반대로 현정부에 들어와 하락 혹은 정체의 추세를 나타냈다는 사실이다.


한국,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세계적 모델


한국의 민주정부들의 경제, 사회정책은 권위주의정부보다도 더 성장중심적이고, 그럼으로 재벌중심-노동배제적이고, 세계의 그 어떤 주요 국가들보다도 더 신자유주의적 워싱턴콘센서스, 즉 시장근본주의를 따르는 경제독트린과 정책라인을 취해왔다고 할 수 있다.전체적인 정책기조가 신자유주의적 정책라인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IMF위기 이후 불과 7,8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시장근본주의적 정책기조가 매우 급진적으로 취해졌고, 그 결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구조가 신자유주의적으로 너무나 급격하게 재편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추동하는 중심적 가치는 경제성장, 이를 실현하는 도구적 가치로서의 효율성, 경쟁, 성과로 평가하는 능력과 업적(meritocracy)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가치와 규범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권력도 갖지 않고 시장경쟁에서 약한 자원을 갖는 보통사람들이, 수의 힘을 통하여 정치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권익을 실현하는 것을 허용하는 정치체제 또는 제도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내용은 실제 한국 정치현실로도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장경쟁에서의 열패자 또는 약자의 위치에 있는 서민층이나 소외계층들은 선출된 정부들이 개혁적이기를 기대하면서 투표했고, 그들을 정부로 선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출된 정부는 시장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이들에게 사회적 보장과 복지를 부여하는 정책을 실현할 위임(mandate)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로크의 개념을 따르면 그것은 정부와 피치자간의 신뢰(trust)이며 최근의 민주주의이론의 개념으로는 책임성(accountability)이라고 하겠다. 이 연결은 하나의 체제를 민주주의, 하나의 정부를 민주정부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고리라 하겠다. 따라서 민주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이념과 가치, 그리고 그에 따른 정책을 솔선해서 수용하고 추구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설명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확실히 우리사회는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가 되었다 하더라도 경제정책은 민주화되지 않았다. 오늘날 민주정부하에서 경제정책과 민주정부를 지지한 사회부문 간에는 연결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한 세계적 모델사례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다.


NL-PD적 문제의식 여전히 유효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나라마다 다른 역사적 조건과 사회적 조건에 따라 어떤 내용을 채울 것인가하는 것은 넓게 열려있다. 그러나 슘페터가 그 출발점을 만든 이른바 최소정의적 개념, 내지는 민주주의에 현실주의적 이해, 즉 민주주의를 엘리트 간 선거경쟁을 통하여 정부를 구성하는 체제라고 이해하는 방법이 정치학에서는 정통이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첫 출발점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가져오는데 참여했던 사회세력들은 민주주의를 이런 내용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민주주의를 만드는 데는 두 세력이 존재했다. 하나는 제도권내의 야당이었던 정당정치인들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화투쟁을 주도했던 운동세력들이다. 前者는 슘페터적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절차적 제도화로 민주주의를 이해했을 것이며, 後者는 한국사회의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실질적 민주주의로 그것을 이해했다.


특히 후자는, 구체제 (ancien regime)가 안고 있는 두 가지 문제를 비판했다. 하나는 냉전반공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권위주의체제이며, 다른 하나는 권위주의산업화에 의한 노동억압과 불평등이었다. 그것은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혁명적 레토릭으로서, 전자는 “NL”로 후자는 “PD”로 표현되었다.


이들 이념/ 레토릭은 혁명적 구호로서 기능했고, 현실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곧바로 현실의 변화를 가져올 대안이 되지 못했지만, 그 레토릭이 담고 있는 핵심 내용만큼은, 민주주의가 실제로 만들어질 때의 사회적 요구를 구성하는 요소였고, 따라서 오늘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문제는 이 레토릭을 현실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로 이어지는 민주정부하에서 한반도탈냉전, 대북정책, 한미관계를 정립함에 있어 NL적 문제제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탈냉전-한반도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의 가치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산물이다. 이들 정부에서의 정책기조는 대체로 온건한 민족공조노선으로 특징될 수 있을 것이다.그것은 한편으로는 구질서하에서 대북증오와 적대가 절대적이었던 것만큼, 불가오류의 절대적 한미관계,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민족자주-민족공조를 대립항으로 했다. 이 대립관계가 현실로 나타났을 때, 그것은 한국의 자율성이 증대된 한미관계와 보다 합리적인 민족공조로 정리, 정착되었다. 그럼으로 이 정책라인은 민주적이다. 왜냐하면 민주화를 추동했던 이념이 실질적 민주화의 내용 속으로 整理-實現되면서 그야말로 정착(settle)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정하게 사회적 콘센서스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다른 한 이슈인 PD적 문제의식은 그간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전혀 정리-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필자가 말하는 정리-실현이란 테제-안티테제간의 접합점을 찾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과거 권위주의산업화의 중심이데올로기로서의 성장지상주의와 재벌대기업중심, 노동억압 및 배제의 경제정책과,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부정과 노동해방이라는 양자 사이의 대립이 민주화이후에 정리-실현된다는 것은, 이 양자 사이의 스펙트럼사이에서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어느 지점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그러므로 그 내용을 구성하는 것은, ① 노동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이며 보편적 원리로서 일정한 경제적 시민권을 획득/부여받고 그에 따라 사회전체와 생산체제에서 주요하고도 정당한 행위자로서 인정되는 것 ②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원리는 존중되나, 제어되지 않은 시장경제는 경쟁, 효율성, 업적중심의 가치만이 아닌 그와는 다른 근원적인 인간가치, 사회윤리적, 공동체적 가치에 의해 민주적인 방법으로 일정하게 규제-제어되는 것 ③ 재벌중심의 경제/산업구조는 다양한 대기업의 존재와 중소기업의 강화에 의해 보다 다원화되고, 영세자영업은 현대화된 자영업으로 발전되는 것 등의 요소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참여민주주의 통한 시민의식 확대와 PD적 문제의식 실현


민주주의는 군주정이나 군부권위주의와 마찬가지로 통치체제의 하나이다. 때문에 다른 체제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역시 사회적 기반 또는 체제의 유지를 위한 지지세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존립을 위해서는 이를 유지하고, 그 조건을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누가 민주주의의 지지자, 누가 더 적극적인 지지자인가? 역사적 조건과 사회세력간 힘의 균형이라는 요인으로 나라와 시기에 따라 민주주의의 지지세력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장경쟁에서의 취약계층과 실업과 고용불안정으로 위협받는 그룹/계층들, 시장경쟁이 가져오는 불평등화의 효과를 정치적 방법으로 완화해주기를 바라는 집단/계층들, 민주정치를 통하여 대표되고 보호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현재적, 잠재적 지지세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논리적으로 그러할 뿐이다. 많은 경우 민주주의는 슘페터적 정의가 말하듯, 엘리트 간 선거경쟁을 의미하는 수준에서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경쟁을 주도하는 정치엘리트 - 그들의 조직적 표현으로서 정당 - 경쟁의 결과 등장한 민주정부가 자신들의 사회적 기반과 단지 논리적으로만 연계되어 있을 경우, 다시 말해 책임성과 위임의 원리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을 경우, 그러한 체제는 민주주의를 형해화하거나, 냉소적으로 만들거나 또는 실제로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다른 어떤 권위주의적, 엘리트적 지배체제 이상의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왜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의 내용을 갖지 않는 한 민주주의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갖지 못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투표에 의한 선거경쟁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실제로 사태를 변화시키기 어렵거니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들이나 학자들은 두 방향에서 대안을 찾는다.한 방향은 투표와 선거경쟁 자체를 의미있게 하고 심화시키는 동시에 직접민주주의의 모델을 살려 참여민주주의의 범위를 넓히고 채널들을 발전시키는 방법이다. 결정과정의 참여범위를 넓히고, 민주적 통제의 이슈영역과 범위를 확대하고, 시민들이 대안적 정보원과 지식을 확보하여 이슈에 대한 계몽적 이해와 이성적 판단의 능력을 확대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것이다(드리젝, 구딘, 그 밖의 참여민주주의 이론가들).


다른 한 방향은, 민주주의의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이를 실제로 할 수 있는 능력, 즉 경제적 조건의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다(달, 린드블룸, 센, 라즈 등). 이 내용들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미 PD라는 형태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제시되었다. 요컨대 한국의 민주주의발전을 위해서는 PD적 문제의식이 현실적으로 정리-실현되지 것이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될 것이다.


국가-재벌대기업 관계의 재편성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세계화시대에 국가 또는 민주정부와 재벌대기업 간의 힘의 관계는 무엇인가? 권위주의 시기는 물론, 민주화이후 초기만 하더라도 양자간 힘의 균형은 말할 것도 없이 국가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IMF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오늘의 상황에서 힘의 중심이 더 이상 국가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칼 폴라니와 같은 대표적인 경제사가는, 시장의 발전은 의도적인 국가/정부 정책의 결과물이라는 사실, 국가가 시장의 틀과 규칙을 만들고, 시장을 특정 형태로 작동시키려는 의지를 갖지 않는 한 시장은 작동하기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시장은 기본적으로 전체 사회공동체의 한 하위영역인 경제영역을 구성하는 특정 형태의 교환의 양식이라는 사실, 그러므로 시장은 전혀 자율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자유적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다.이러한 시장과 사회공동체와의 관계는, 일찍이 아담 스미스가 시장의 작동과 발전이 보다 큰 사회공동체가 요구하는 사회적 윤리의 기반이 되는 도덕적 감성과 병행하지 않을 때 시장을 포함하는 사회는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던 맥락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시장의 총아로서의 재벌기업들이 얼마나 법의 지배에 종속되고 투명하냐 하는 것은 매우 의문이다. 한국의 기업은 그만두고라도, 법의 지배와 회계투명성을 감시-감독하는 세계최고의 회계기업들조차 엔론과 월드콤의 사례에서 보여주었듯이 그 자체 부패로 얼룩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투명성 실현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적 관리체계에서조차 회계의 투명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잘 알고 있듯이 “국가 실패”를 말하기 전 시기는 “시장 실패”의 시기였다. 케인즈의 경제이론은 시장실패에 대응코자했던 산물이며, 일본의 국가-공동체적 혹은 비자유주의적 경제운영원리는 “재팬 넘버 원”으로 평가된 바 있었다. 요컨대 국가-정부 없는 시장사회는 존재한 적도,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 국가/정부와 시장은 경제운영에 있어 두 원리가 어떻게 결합되는가 하는 결합의 상대적 정도를 의미하며, 그 결합의 정도는 사이클을 그리며 상대적 비중의 변화로 나타날 뿐이다.


신자유주의의 정체


신자유주의는 과거의 자유주의와는 종류가 다른 급진적 시장지상주의의 가치를 담지하며 이를 구현한다.과거의 자유주의는 시장지상주의(libertarianism)와 접맥했다 하더라도, 19세기로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민주주의와 비록 긴장과 갈등관계를 가졌지만, 양자는 잘 병행발전 했고,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원리들을 많이 수용하면서 발전했다.


이에 반해 오늘의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정치 그 자체에 적대적인, 그럼으로써 일체의 경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시장지상주의의 이론인 것이다. 민주주의의 질과 내용은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국가와 시민사회, 공동체적 필요와 사적 선호, 국가에 의한 공적 강제력과 자율적 교환 등 이들 양자 간의 구분들이 실제로 어떻게 배합되느냐에 따라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적 필요와 공적영역을 극단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또 그렇게 했던 사회주의 체제가 민주주의와 병립하지 못했듯이, 사적선호와 사적영역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역시 민주주의와 병립하기 어렵다(쉬미터).오늘날 한국사회에서나 세계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의 한 저명한 주류경제학자는 한 세미나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오마이뉴스, 2004.9.17). 세계적인 좌파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은 “시장주권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보완이 아니라, 그에 대한 대안이다”라고 말했다(홉스봄, 2001). 발언 내용은 동일하다. 그러나 사실상 그 의미는 정반대이다.


前者는 한국의 민주정부(노무현정부를 지칭)의 경제정책이 분배에 치중하고 반시장적이라고 전제하면서--필자는 이 평가 자체에 동의하지 않지만--신자유주의적 자유경쟁체제를 옹호하고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한국사회의 강력한 보수적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반면 後者는,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신자유주의적 시장지상주의를 부정하는 진보적 견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민주정부들은, 급진적 신자유주의의 발전으로 인하여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스스로 허무는 위험지역으로 접근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의 현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민주주의 그 어느 것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고서는 최소한의 사회적 통합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양자는 어디에서인가 접점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폐기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통하여 신자유주의적 진행이 어느 지점에서 중지 혹은 완화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시장지상주의' 적극 수용과 탈정치화


흥미있는 사실은, IMF위기이후 민주정부들의 정책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지상주의의 이념과 가치를 수용한 것은, 외부적 압력의 강제에 의해 선택이 완전히 닫혀있는 상황의 산물이었다기보다 민주정부 스스로 적극적으로 그것을 선택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민주정부에 의한 선택이 성장주의, 시장효율성, 시장합리성, 시장주권의 이념과 가치가 완강한 헤게모니로 자리 잡도록 한 가장 큰 요인의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오늘날 민주정부는 물론, 민주주의 전체에 대해 심각한 부정적 효과를 갖기에 이른 것이다. 그 경제적 사회적 결과는, 구래의 재벌중심적 성장지상주의와 중소기업 및 노동배제적 정책의 복원, 그로인한 노동 및 사회보장 및 복지정책의 저발전, 빈부격차의 심화와 사회해체 효과의 가속화 등의 문제에 대해선 앞서 말한 바와 같다.


민주주의와 시장원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념, 가치, 제도, 실천을 갖는 것으로, 민주주의는 사회의 이익과 갈등의 광범한 표출을 허용하고 정당이나 운동 또는 이익집단들을 매개로 하면서, 갈등해결의 제도화를 통해 사회를 통합하는 하나의 정치체제이고, 일차적으로 정치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시장경쟁과 그것이 창출하는 불평등화와 소외효과를 중화하고 보완하는 민중적 성격을 띠는 정치제도이며, 체제이다. 그리고 민중들이 스스로 그들의 권익을 증진할 수 있도록 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정치과정에 의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한국의 기득이익들이 왜 정치를, 그리고 나아가서는 민주주의를 폄훼하고 축소시키고자 하는가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주정부들이 스스로 시장원리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탈정치화와 정치의 다운사이징에 앞장섬으로써 왜 스스로의 권력과 사회적 기반을 약화시키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한국민주주의의 커다란 아이러니라 하겠다.


민주정부 변신의 3단계


민주정부의 변신 (metamorphosis)은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①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세력들의 다수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것으로 믿는 정당의 후보를 지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민주정부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들 정치적 집권세력은 정부가 된 이후 어떤 경제적, 사회적 정책을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 대안적 정책, 실천프로그램, 그리고 이를 추진할 인적 역량을 갖지 못한다.


② 정부가 된 이들은 시민사회와 시장에서의 막강한 헤게모니를 대면하게 되면서, 이들은 국가관리와 정부정책의 수행/업적평가라는 압력에 놓이게 된다. 그 압력은 주로 대중매체와 여론에 의해 두 방향에서 작용하게 되는데, 하나의 방향은 정부의 업적이 언론을 통하여 시시각각으로 평가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정부의 핵심이라고 할 리더십과 집권세력 자체에 대한 능력이 모든 계기마다 평가되고 추궁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두 외부세력에 대한 의존을 키워왔는데, 하나는 시민사회 및 시장으로부터의 권력집단인 재벌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내의 전문가집단인 행정관료, 테크노크라트이다. 이러한 헤게모니와의 타협은, 집권정당과 사회부문간의 연계가 약하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다.


불확실한 위임(mandate)과 대표-책임간의 연계의 느슨한 구조위에서 민주정부가 아무런 경제-사회정책을 갖지 못하는 동안, 이른바 NL적 문제의식 즉 대북문제와 한미관계에 있어서는 일정한 개혁성을 유지하려는 자세를 견지한다. 일종의 정책적 플레이-오프가 발생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정책적 측면과 관련하여 민주정부와 권위주의정부가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역설적 교차현상을 발견한다.민주정부의 집권세력들은 그들 스스로가 절차적 정당성과 도덕성을 가졌다고 자임하기 때문에, 문제는 사회의 민중적 지지기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취약하다고 믿는 보수세력과 좋은 관계설정 또는 지지의 확대가 중요하다고 믿고 그렇게 노력한다. 결과는 경제, 사회정책 영역의 보수화이다.이는 과거 권위주의 시기에서와는 정반대의 패턴이다. 권위주의정부의 집권세력은 그들이 절차적 정당성에 있어 취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후적 정당성을 가져다주는 정책을 통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많은 실질적 개혁들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③ 헤게모니와의 타협에 의한 문제해결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증폭시키게 된다. 민주정부는 두 요소에 의해 부정적 효과의 증폭에 직면한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자체가 결과하는 빈부격차, 고용불안정, 노동자소외, 사회해체와 같은 부정적 효과에 의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체성의 위기가 수반하는 리더십의 약화와 정부수행/업적의 하락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부에 대한 잠재적, 현재적 지지세력의 이탈이 증대하고, 정부의 기반은 더욱 취약해 진다.


- 이러한 실망의 사이클이 몇 년 후 있을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되풀이 될 것인지, 다시말해 선거 때는 개혁적 대표는 민중적 힘과 접맥되고 집권 후에는 헤게모니로 돌아가는 열망-실망의 사이클 혹은 접맥-이탈의 사이클이 반복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민주정부가 강한 레토릭을 통해 아무리 개혁적인 인상을 주고, 그것을 정서적 급진주의로 특징짓든 간에, 민주정부와 재벌기업간의 동맹이 이루어지게 되고, 그럼으로써 정서적 급진주의와 실제 제도적, 정책적 실천에 있어서 극도의 보수적 내용이 기묘하게 결합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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