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한 줄로 이 책을 설명하자면 그림은 삶의 투영이다. ~싶을 때, ~싶지 않을 때, ~그리울 때, ~생각날 때, ~느낄 때… 책의 각 단락들은 이렇듯 우리 일상의 순간들을 그림과 함께 소박하게 담아내었다. 살아있어서 감사해야 하나. 살아있어서 느낄 수 있는 것들… 감각이 퇴행적이지만 않았어도, 예술은 없었을 것이다. 기억의 저편에 대한 아쉬움, 동경은 미술이라는 복제를 낳았다. 기억하고 싶은 사람, 감정. 순간. 현대의 사진이 많은 부분을 이를 담당하고는 있지만, 그림에 담긴 손길과 인내의 온정을 표현하지는 못한다. 사진은 차갑다. 렌즈는 보여주기만 할 뿐 소통은 적막하다.

이 책에서 시선이 머무는 곳을 천천히 살펴보자. ‘베일을 쓴 여인’ <17p>의 눈에는 수정 같은 사랑이 빛나고 있다. 그녀의 시선에 나의 시선이 닿자마자 차원의 문이 열린다. 사랑은 눈빛에서도 발견 할 수 있는 선명한 것이다. 그렇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중에서)<42p>. 이해라는 이름의 그것은 피만큼이나 진하게 젖어 든다. ‘아버지’<41p>는 희생의 다른 이름이었다. 깊은 골, 굳어버린 생명력에는 한 인간의 일생이 닳고 달아 존재의 흔적만을 남긴다. 닳아서 모두 없어질까 우려하는 마음이 그림을 메우고 가슴을 메운다. 그렇지만 복제의 욕망은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내 자식이 아무리 예쁘다고 그 아이를 수십 명 복제하고 싶지는 않지요. 하나로서 오히려 소중한 존재이니까요.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결코 복제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지요. 소중하나 복제하고 싶지 않은 것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이가 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183p>

이주헌씨의 이번책은 그림이 주인공이 아니다. 그림 속의 내가 주인공이다. ‘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라는 제목은 여인의 시선에 자신을 던지고 싶어하는 저자의 시도이고, 바람이 담겨 있다. 어머니의 시선, 아내의 시선에는 저자가 느끼지 못했던 위대한 감성의 보고, 삶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믿음과 진리로서 예술을 뛰어넘는다. 하여 이 책에 수록된 인간적인 그림들은 그가 해석을 통해 보고자 하는 것들이다. 가장 완벽한 이해는 ‘되어 보는 것’이기에 저자의 친절한 시도는 독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되어 보기. 그림을 읽는 것은 사실 어렵게 느껴진다. 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여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 벗은 느낌. 깊이 감추어 놓은 것을 꺼내 놓았을 때 진실 또한 거짓이 없다. 그렇게 표출한 감정의 누드를 이 책은 ‘댓글’로 보여준다. 인터넷의 풍경은 댓글 문화라는 적극적인 표현을 권장한다. 이 책의 출판 계기가 된 사이트에 전시되었던 그림과 댓글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기에 풍성함, 생생함을 한껏 느낄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독자의 마음을 쓸 수 있는 공간 여백이 꼭 있다는 점이다. 이름란과 밑줄란. 이 책을 읽을수록 저 공간이 탐이 난다. 나도 댓글을 달고 싶다.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펜을 짚는다.

무엇을 볼 것인가. 고민할 필요 없이 그림 속의 나에게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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