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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한창우 감수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아이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좋아한다.(여기서 높다라는 의미는 아이의 시선을 기준으로 한다.) 그 짧은 다리로 끙끙대며 식탁, 책상, 침대 위에 오르고서 한껏 짓는 미소에서는 일종의 자기 만족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이 그들을 위치에너지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가? 혹시 가구의 인력? 그곳에 올라서서 보는 세상은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들에게 또 다른 세상으로 다가온다. 모든 게 높아보이는 익숙한 ‘낮은 세계’에서 벗어나, 모든 게 낮아보이는 낯선 ‘높은 세계’로의 탐험은 그래서 즐거운 것이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 자신의 세계관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경험은 단 1m의 고저차에서도 느낄 수 있는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러한 것을 많이 잊어간다. 흔히들 나이 탓을 하지만, 이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닌 태도의 문제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유명한 장면이 있으니, 책상 위에 올라 권위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자신의 세상을 파괴해야 하듯이, 하나의 틀을 깨기 위해서는 그것을 밟고 올라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기존의 권위와 인식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막대한 위험과 노력을 감내해야 한다. 선험적인 지식이 아니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지식은 바로 이러한 과정의 연속이었고, 바로 그것이 과학의 역사가 되었다. 절대 진리란 없다지만 절대 진리를 쫓는 그들에게는 자기 파괴, 부정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나이 탓을 하는 자들은 이러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득 갖고 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잃기를 주저하고, 아는 것이 많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호기심은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인간은 진리와 인생 그리고 불가사의한 현실의 구조를 직시할 때,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두려움에 빠지곤 한다. 그저 매일 이 불가사의한 세계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걸로 족하다. 신성한 호기심을 잃어서는 결코 안 된다. –아인슈타인-
절제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한 즐거움은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 뇌가 커서 생길 수 밖에 없는 호기심에서 찾을 수 있다. 쿼크 같은 미시 세계에서부터 은하에 이르는 거시 세계에까지 우리 생활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궁금한 것은 못 참겠다는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는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놀라움은 E=mc2 이 간결한 공식에서 지금까지 발견한 가장 위대한 원리를 담았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독특한 설명방식으로 우리의 본능을 더욱 바짝 당기는 데에 있다.
에너지와 물질은 본래 하나라는 원리를 담은 저 공식은 간단하면서도 무척이나 난해하다. 무릇 일반인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생각해내기 어려운데,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니 꽤 복잡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은 대중적인 글쓰기로 독자의 본능을 충족시킨다. E=mc2가 탄생하기 전부터 시작해서 E=mc2가 핵폭탄을 낳기까지 아주 흥미롭게 전개한다. 상대성 원리라는 새댁의 핵폭탄 같은 딸의 출산일기라고 해야 하나, 독특한 방식으로 설명하기에 즐거움이 있다. 과학자의 일생, 과학자들의 시기와 질투, 전쟁 다큐멘터리 같은 중수 공장 폭파 작전 등 다채롭고, 풍요로운 이야기거리가 펼쳐진다. 물리학이란 학문이 대중에게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아 보인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독서의 확장을 돕기 위해 저자의 추천 도서 목록까지 서비스한다. 재미있는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핵문제의 원인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면서 핵문제에 대한 인류의 고민도 함께 담아 내고 있어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 또는 생색내기가 언뜻 보인다는 점이다. 과학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다룬다지만 사실 구색을 맞추려는 것에 불과해 보인다. 저자의 입장에서 보면 찬란한 역사의 탄생 앞에서 발생한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사소해 보인다. 인류의 위협-위대한 발견, 광폭한 제국주의자-위대한 과학자. 종이 한 장의 차이에 불과한 이들의 묘한 관계를 보는 저자의 시각에서는 은근히 악취가 난다. 주제가 반핵이 아니니깐 이 부분은 넘어가기로 한다.
결론적으로 아인슈타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호기심에 호기심을 얹어 주니 과학 교양도서로는 흠집이 없는 책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