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상상한다. 아주 커다란 날개를 기지개 하듯 쭈욱 펼치는 상상을… 내 등의 살갗을 뚫고 나온 백색의 빛은 바람에 흐트러지고, 하늘은 가까워지고 마음은 편안해진다. 공허함이 나를 채우지만, 꼭 의미가 있어야 할 필요는 못 느낀다. 이번에는 우주의 반대편을 내 앞으로 잡아 당겨 지구를 뒤로 놓아 본다. 찰나의 힘은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미세한 틈에 현실을 밀어 넣고, 만고의 기억을 더듬게 한다. 미래가 어제에 일어났다 해도 놀라울 것은 없으며, 과거 없이 나아가는 운명에 나직한 미소 한 방울 적선하는 여유는 신의 영역을 넘나든다.

환상, 몽상, 공상, 망상, 상상. 다양한 듯 하지만, 그 뜻을 형상화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단어에 가두어 둘 수 있는 성향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하는 본인에게 있는데, 그것을 담아낼 그릇을 들이대는 것은 무모함이다. 그래도 그 안의 세상, 또 그 밖의 세상. 이 세상 저 세상에 양 발을 걸치고, 왼발 오른발을 딛었다 떼었다 하는 즐거움은 건조한 일상의 단비가 되어 준다. 미하엘 엔데의 ‘자유의 감옥’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알이 꽉 찬 열매의 과즙이 아니다. 대신 사막의 저편에서 거대한 갈증을 업은 자의 머리 속의 과즙에 가깝다. 상큼하고 입안에 싸악 퍼지는 달콤함에 대한 기억은 상상 속의 실재적 의미를 만들어 낸다. 입안에 가득 고인 침은 사막의 샘이 되고, 생의 기억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된다. 그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단편이라 그런가. 툭툭 던지는 상상의 나래는 짧아서 더욱 강렬하다. 이 책에 실린 8편 중에 하나인 ‘미스라임의 동굴’은 그 맛의 절정을 보여준다. 황홀한 기쁨의 탄성과 슬픔의 탄식. 모호한 경계에 독자를 놓아두고, 판단을 저 멀리 던져버린다. 너무 가혹해서 너무 좋다. 메조키스트도 아닌데 즐거운 고통이 황홀하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진실과 거짓에 대한 불가지론적인 세계관. 알 수 없으면, 알 수 없음을 즐겨라. 그런 것인가?

‘자유의 감옥’편을 보면 인간의 자유의지와 이성적 판단에 조롱을 보낸다.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있는가?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야 몰려온 억지성의 깨달음은 식상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독특한 동화적 상상을 이끌어 낸다. 환상 소설의 제 역할을 충분히 했으니 그 선에서 만족한다. 사실 부실한 단편들도 몇몇 보이지만, 단 한편의 글, 단 한 문장이라도 건졌다면 충분히 성공한 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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