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속의 한일 2천년사
요시노 마코토 지음, 한철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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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오늘을 들썩이게 하는 요즘이다. 촌스러운 역사의식으로 극우-반공-제국주의자이자 파시스트로 커밍아웃을 선언한 k대학 명예교수나, 일제 부역자들에 대한 과거사 청산,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 중국의 동북공정 등의 사회적 논란들을 보면은 역사가 먼 과거의 것이 아님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이라는 추상적인 집단의식의 족쇄로, 혈육과 전통이라는 도구로 재국민화를 이끌기 위한 것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우리의 문화적 소양과 지적 수준이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오! 수정’이라는 영화는 ‘동일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은 동일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은 사건’을 겪으면서도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은 비극적이다. 각자의 해석과 이해로 읽는 세상은 선함과 진실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반대편에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멸시와 무시하는 태도는, 참을 수 없는 대칭성을 깨기 위한 비대칭성을 향한 제국주의적 요구가 된다. 역사의 수많은 맞물림과 뒤섞임 속에서 자국 중심의 역사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낳고, 그 어리석음이 우리를 속박한다. 그것이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동아시아)의 현주소이다.

역사 왜곡은 별게 아니다.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역사이다. 그것은 기억의 무결성에 대한 기만적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 안에 있는 정치성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의 영향력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헤게모니의 씨앗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은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는 천황을 대표적인 예로 드는데, 일본 제국주의의 꿈을 천황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은밀하게 내비침으로써 현실적 어려움을 허상적인 믿음으로 대체한다. 더불어 정한론으로 자국의 우월성과 조선의 미개성을 전제로 삼아 침략의 당위성을 내재한다. 한반도에 대한 속국이념을 내재한 ‘천황’이라는 용어에 어찌 민감하지 않을 수 있으랴. 민족 감정의 문제가 아닌 자존의 문제 아닌가.

물 흐르듯이, 이웃 국가의 정세와 외교 등 다각적으로 통찰하는 이 책은 자국중심주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유기적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한-중-일의 역사를 면밀하게 살핀다. 관계란 자와 타가 만나는 부분에서 형성되고, 그 실체의 본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 이해적 해석에서 벗어나 관계에 대한 균형적인 시각이 베어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유불리를 떠나서 진지한 학자로써의 학문적 열의와 역사관에서 출발한다. 또한 곳곳에 있는 사료와 삼국을 비교한 도표들의 적절한 구성과 배치는 책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또한 규슈설-기나이설, 칠지도, 광개토대왕비, 임나일본부설 등과 같이 매우 논란이 많은 문제들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 있는 부분으로는 대칭적 관계를 가지는 각 단락의 부제들을 꼽고 싶다. 책의 성향과 역사적인 주안점을 제시하는 듯 하다. 왜의 왕권과 삼국(허상과 실상), 일본의 성립과 신라-발해(이념과 현실), 헤이안-가마쿠라 시대의 일본과 고려(자존과 동경), 무로마치-쇼쿠호 시대의 일본과 조선(적대와 융화) 등 내용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시대적 정치상과 외교상을 제대로 함축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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