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배우만이 영화를 빛내는 것은 아니다. 미장센이 은근히 독특한 맛을 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그림자에 가려진 얼굴에서 그의 내면, 성향을 추측해 볼 수도 있고, 카메라의 각도, 피사체와의 거리에 따라서 관계, 심리 등 무수히 많은 의미를 만들어 내기에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풍부하고 강해진다. 이 책 또한 숨겨진 맛을 내용보다는 형식과 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각 장의 시작 부분에 인용된 헌법 전문에 있다, 그 장의 내용이 헌법 전문과 대조를 이룸으로써 현실의 부조리를 극대화, 표면화 시켜서 얻게 되는 카타르시스가 백미 중의 백미이다.

각 장을 살펴 보면, 1장 ‘정답은 없다.’ 이 부분에서는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는 헌법 전문을 인용한다. 최상위의 법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명시한 ‘헌법 전문’은 현실 앞에서 유명무실해 진다. 자율과 조화라는 말은 질서와 권위라는 이름으로 억압된다. 인간의 한계를 알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소통하여 합리적 절차를 이끌어 내야 진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립할 수 있지 않은가. 정답은 없는데 정답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에 메스를 들이대는 장이다.
2장 ‘국가란 이름의 괴물’에서는 「대한 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은 침해할 수 없다」는 부분을 인용하지만,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독재성을 말한다. 법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닌 국가의 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마치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로봇들의 갑옷이 로봇 보호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로봇의 힘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말이다.
3장 ‘법률가의 탄생’은 「사회적 특수계급을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떤 형태로든 창설할 수 없다.」를 인용하면서 법률가 집단이 형성하고 있는 특권적 계층의식과 사회적 지위로 부당한 이익 취함을 낱낱이 까발린다.
4장 ‘똥개 법률가의 시대’를 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한다.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한다고 하지만, 법관과 변호사가 가지는 법조계의 전관 예우, 전혀 독립적이지 않은 관계 등을 말하면서 우리 사회가 갖춰야 할 제도적 장치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5장 ‘대한민국은 검찰 공화국’에서는 헌법에 명시된 검찰의 권한과 의무를 명시하고, 현실에서의 검찰의 남용되고 있는 권리를 고발하고 있으며,
헌법정신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설명하는 6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정신’에서는 사장, 종교, 양심의 자유 등을 역설하고, 7장에서는 침해되고 있는 기본권인 진술 거부권을 논하고, 8장에서는 침해되는 권리들을 어떻게 찾을 것이며, 평등과 자유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 어 가는 지향점을 이야기한다. 역시 헌법 전문과 반대되는 현실에 심한 혼란스러움을 받게 되는 장들이다.

짜임새가 돋보이는 책이고, 법이라는 틀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왜 법과 가까울 수 없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책이다. 헌법의 '풍경’이라는 제목답게 시야도 넓혀준다. 국가, 법률가, 기본권 등 헌법을 둘러싼 세계는 복잡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를 말해준다. 우리는 바꿀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는 점이다. 법조계가 높은 장벽을 쌓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업고 무한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현실은 사실이지만, 그 장벽이 아무리 견고하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장벽은 아니다. 법조계에서도 이두식씨 같은 키메라들이 출현하고 있지 않은가. 두드려라 그럼 무너질 것이다. 일단 말도 안 되는 한자, 일본 어휘로 일반인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용어들부터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법조인 다운 뻑뻑한 어휘가 전혀 없음이 매우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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