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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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넘쳐 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자극적이어서 현실을 대체하는 시물라크르는 영혼마저도 잠식하는 듯 하다. 체험은 끊임없이 복제되어, 일시적이고 반복적인 이미지가 되어 감각마저도 무디게 만든다. 그렇게 무뎌진 감각을 추스르기 위하여 욕망은 끊임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점점 퇴폐적으로 변질 되거나, 불가항력적인 무력감만을 채워준다.

‘피가 흐르면 앞에 실어라(헤드라인 뉴스의 케케묵은 지침 39p)’
너의 것은 너의 것이고, 나는 그것을 구경하는 구경꾼이다. 대중의 속성을 잘 아는 대중 매체는 구경꾼의 욕망을 숨김없이 착취한다.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구경거리가 되는 세상에는 오직 보여지는 자와 구경하는 자로 나뉘어진다.

이러한 인간 본성의 병적인 측면과 잃어버린 현실 감각에 대한 저항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해본다. 이것에는 질문의 본질적 물음이 유의미한가 무의미한가라는 회의도 포함한다. 그래서인가? 가장 현실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사진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는 아이러니를 정면 돌파하는 수잔 손택의 시도에서 숭고의 미가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이 책은 사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쟁을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고통을 지켜봐야만 하는 보는 이의 고통을 말하고도 있다. 그러한 고통의 종식을 바라면서도, 종식 될 수 없는 현실이 주는 무력감에 대한 저항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사진에 관한 풍부한 자료와 지식을 펼쳐 보임으로써 증명하려 한다.
호소를 감추어 냉철함을 드러내고, 끔찍한 사진들(시체, 집단 린치, 훼손된 신체, 잔인한 형벌)을 곳곳에 배치하여 공격적이고 선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기에, 이러한 방법은 대중 매체의 그것과 같게 된다. 하지만 결코 같지는 않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봐야만 하는가를 분명히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참담함 그 자체가 아닌 그 참담함 속에서 인간이 해야 할 행동의 필요성을 역설하기에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정성의 그윽한 향이 가득하다.

‘상상력의 실패, 공감의 실패라고 우리는 이런 현실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에 실패했다고..(25p)’
하지만 우리는 실패를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시신경이 전해주는 잔상은 우리의 통점을 자극하지 않는다. 단지 고통의 기억을 도와주는 자극일 뿐이다. 그러한 자극은 현실을 해석한다. 경험에 의한 기억의 재생은 왜곡을 필연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은 끊임 없이 왜곡을 부추기고 있다. 보여줘도 되는 것과 보여줘서는 안 되는 것을 구분 짓는 그들은 인류의 고통의 마디마디를 분절시키려는 수작을 가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또한 아군인가 적군인가를 구분하는 데에만 집중하던 것을 중단해야 한다. 진실과 위선을 가려내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사진으로부터 얻어지는 연민을 떨쳐내야 한다.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이런 감정은 곧 시들해지는 법이다.’(153p). ‘사진은 논쟁이 아니면, 눈에 보이는 사실의 조잡한 진술일 뿐이다’ (48p)

그러한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사회,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떠한가? 등장은 화려했다. 민중은 분노했으며, 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들끓었었다. 그러나 권위를 증오하면서도 권력을 숭상했고, 평화를 외치면서도 전쟁터로 전진하였다. 이미지(개가죽을 들고 개혁이라 하는)를 앞세운 노 정권은 효순, 미선양의 주검을 대선에 이용해 먹었고, 한총련과 전교조는 미군에 잔인하게 희생된 여성들의 처참한 사진들을 주관적 정치의식으로 사유화 시켜버렸다. 수많은 이미지는 대중을 압도하였고 정의를 질식 시켜 버렸다.

우리 사회에서는 표면화 된 논쟁의 그늘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제대로 인식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기득권 수호, 대중의 통제를 목적으로 검열이라는 이름 하에 벌어지는 조작과 은폐. 그러나 그 반대 진영에서도 처참한 사진들을 통하여 주입시키려 했던 불순한 의도를 서로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미국이 다른 국가의 치부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을 세우는 ‘수고스러움’을, 자신들의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그래서 건립되었어야 하는 노예 기념관에는 쏟질 않는 이유와 동일하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목적과 의도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은 사진에 포획된 슬픔과 고통을 두 번 죽이고 말았다. 잔인하고도 무능한 사람들아. 타인의 고통을 타인에게 묻어두는 사람들아. 약자를 대변하겠다는 자들이 약자 위에서 호령하는 자들아. 사진은 현실과 직시를 요구한다. 당신의 진정한 모습이 찍히길 원한다.

나 또한 타인이기에 나의 글에서 나는 위선의 냄새를 참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경계하고 또 경계할 것이다.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시선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내 것이 될 수 없을지언정 침묵의 죄를 지어서는 아니 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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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시선 <타인의 고통>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8-07 03:55 
    타인의 고통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이후(시울)전반적인 리뷰2007년 8월 5일 읽은 책이다. 이 책의 리뷰를 적으면서 처음 안 사실이 지금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책의 표지와 지금의 표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뭐 이 책의 발간일이 2004년 1월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기존의 책 표지 자체도 타인의 고통을 드러내는 그림이었기에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바와 약간은 상충되는 부분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