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끝 그리폰 북스 18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SF라는 장르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외계 문명, 경이로운 과학기술의 발전, 우주, 심해, 다른 차원의 세상 속에서 독특한 상상과 영감을 얻는다. 과학기술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그곳에서 미래를 그려낸다.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주는 답답함이 싫어서인지도 몰라도 미래는 언제나 현재만큼이나 중요한 관심사이다. ‘유년기의 끝’은 나의 이런 취향과 아주 잘 맞는 테마를 갖추고 있다. 로저 젤라즈니, 하인라인, 아이작 아시모프와 더불어 SF계의 거장인 아서 C 클라크의 소설이라는 간판만큼이나 흥미로운 내용과 주제의식이 강렬하다. 가이낙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모태가 된 작품답게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내용들이 이어진다. 인디펜더스 데이의 첫 장면을 연상시키는 외계문명의 접근, 알 수 없는 인류에 대한 호의와 인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날’은 점점 다가오는데…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 무엇이 우리를 이끄는가. 우리가 결국에 맞이하게 될 것과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궁금증들을 점진적으로 증폭시키는 전개와 복선들의 은밀함이 아주 매력적이다. 마지막을 쉽게 예측 할 수 없으니 반전이라고 부르기에는 적당하지 않지만 희망적이지도 않은 그렇다고 비극적이지도 않은 결말은 백미 중의 백미라 생각된다. 그렇게까지 담담하고 정제된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게 그 장엄한 장면을 하나하나 같이 지켜보는 느낌은 참 묘한 느낌을 준다. 우주에서 인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런식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한 심한 무기력감, 그러나 새로운 시작이 있기 위해서는 그 끝도 존재해야만 하는 운명적인 당위성은 ‘유년기의 끝’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한가지 걸리는 것은 온갖 분쟁과 갈등으로 극을 치닫는 인류의 몰이성적인 역사의 진로를 이상적이고 절대적인 세계와 존재에 의하여 강제로라도 변경되었으면 하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이는 것 같다. 올바른 힘이 곧 정의가 된다면 이상적인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라고 플라톤의 철인정치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정작 그것의 과정은 허무맹랑하고 너무 추상적이긴 하다. 물론 책 내용에서는 그것에 반발하는 사람들의 집단에서 그 해법(?)을 찾긴 했지만, 우주 속에서 인류의 한없이 가벼운 존재성을 통하여 인류의 반성과 겸양을 찾기에는 약간 부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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