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Jimmy Fantasy 2
지미 지음, 백은영 옮김 / 샘터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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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하루에 지하세계에서 4시간 정도를 머무른다. 내가 지나온 역은 지나갈 역이 되고, 지나갈 역은 지나왔던 역이다. 삐걱, 덜커덩 거리는 소리, 아줌마의 수다, 아저씨의 술주정, 능숙한 장사꾼의 호객행위, 기계적인 안내 방송이 한참 귀를 때리다 보면 나는 지상세계로 발걸음을 뗀다. 익숙한 발걸음이 늘 나를 따라다니고, 그렇게 도시의 건조한 일상은 이렇게 시작하고 끝난다. 목적지를 향해 나는 묵묵히 가고, 목적지가 나를 소리없이 끌어 당기는 도시의 인공적인 순환계는 인간의 영혼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 같다. 부실한 닭처럼 고개를 숙이고 꿈을 꾸는 자들은 필연이던가.

Sound of color. 이 책의 부제는 이러한 지하세계를 아름다운 색채로 그려냈다. 각 지하철 역은 바닷속, 꽃밭, 오즈의 마법사의 황금길, 드넓고 경계가 없는 자유의 공간은 상상력과 감각으로 채워진다. 역과 역은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생뚱맞다. 빛보다 더 밝고 명료하게 그려낸 세계는 아름답고도 고독하다. 앞의 길은 트였어도, 동행하는 자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지하철’은 고독한 한 인간 그러나 자유로운 영혼이 그려낸 지하세계의 초상화이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감추기 위한 위장이다. 북적이고 소란스러운 도시의 낮은 고요한 불빛이 치렁거리는 밤의 가면이리라. 지하철 그것은 진정한 나의 삶의 일부를 가리기 위한 신의 장난일 것이다. 눈을 감자. 그리고 꿈을 꾸자. 다음에 정차할 역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와 흥분은 나를 움직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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