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연구원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너무나도 유명한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런데 알은 깨고 나와야 하는 세계여야 하는가. 그 당위성은 아주 냉엄하고도 비관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에서 설파된다. 어떤 세계를. 왜. 무엇을 위해.

우리는 하나의 세계관에 의해 의식의 한계성을 지닌다. 삶 자체에 깊숙이 스며있고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하는 세계관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 대부분의 삶의 목표는 물질적 풍요와 욕망에 대한 충족을 들 수 있다. 사회 활동 자체가 우리의 욕망을 채우는 과정인 것이다. 기술은 이러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진보해왔으며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올려 놓았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열역학 제2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엔트로피의 총량이 증가한 다는 것은 무용한 에너지의 증가를 의미하고 이것은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를 의미한다. 물론 에너지가 전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가 살 수 있게 하는 포괄적인 자원의 한계를 말한다. 또한 엔트로피의 증가는 무질서를 양산하기 때문에 인류의 시스템은 비대해지고, 전문화되어 간다. 그 비대함을 유지 관리 하기 위해 더욱 더 고 엔트로피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브레이크 없이 인류는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이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이 책에서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 한들 마이너스 엔트로피는 폐쇄계에서는 불가하다. 단지 엔트로피의 증가만을 가속화 시킬 뿐이다. 인구의 증가는 더욱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그것이 나무에서 석탄으로, 석탄에서 석유로 그리고 원자력으로 얻기 힘들고 위험한 대상으로 옮겨 가고만 있지 전혀 개선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자연은 순환하는 것이고, 인간은 언젠가는 땅에 묻히기 마련 아닌가. 다만 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소중히 하면 될 것 같다. 물론 절벽으로 달리는 우리의 ‘숙명적인 아주 먼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을까?하고 의구심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현재의 삶에도 그 영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만족스러운가?를 생각해보면 알 것 같다. 오염과 혼란, 각종 위험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삶이 바로 고 엔트로피 문화가 만들어낸 부산물 아니던가.

간단히 이 책의 주제를 말한다면, 오만한 인간 중심의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저성정, 저 엔트로피 문화를 형성하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자연과의 동화를 통하여 공존을 모색하라. 제목만 보아서는 물리학 관련 서적 같지만, 이 책의 성격은 주제만큼이나 복합적이다. 동양 철학과 종교의 사상을 말하고, 생태주의와 저성장과 분배를 논한다. 분배 없이 저성장을 논하는 것은 선진국의 횡포이며, 서양의 물질중심, 자연의 식민화를 비판하면서 동양사상에서 그 대안을 찾는 등 그 범위와 깊이에 있어서 흥미를 돋군다.

'전쟁 준비는 인간 활동 중 가장 많은 엔트로피를 증대시키는 활동이다. 미사일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 뿐이다. 파괴를 위해 사용하거나 고물이 될 때까지 보관하다가 폐기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 미사일을 만드는 데 들어간 지구의 자원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후손들이 쓸 쟁기를 빼앗아 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19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