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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 인민의 삶을 현미경으로 그려냈다는 「닭털 같은 나날」을 읽어보니 수학에만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부대끼는 사람들 틈에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일상의 공식, 그렇게 매일 소비되는 인생을 돌아볼 기회조차 잊어버리게 하는 남루한 일상. 그것들은 국경, 시간을 넘어 비슷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늘 숨쉬고 있었다. 더럽고, 치사하고, 왠지 쪼잔한 느낌마저 갖게 하는 그것들이 몸에 익숙해지는 순간을 ‘사회화’됐다고 하는 것일까. 꿈이 발육촉진제로써의 역할에 그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통하여 얻은 좌절과 비애가 던져주는 현실감각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 변화에 대한 당위성, 무엇보다도 어떻게 되든 살아야 한다는 목표는 비장하고 비정한 바람이 되어버렸다.
양은냄비 같이 가볍게 달그락 거리는 값싼 일상과 우리도 익숙한 ‘이기적 소시민’을 보여주는 ‘닭털 같은 나날’, 권모와 술수, 탐욕과 영욕으로 가득찬 전형적인 관료사회를 비판하는 ‘관리들 만세’와 재난보다 더 무서운 정부의 무책임함과 야만성을 기록한 ‘1942년을 돌아보다’, 이 세가지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중국인들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엿보기의 즐거움, 소설은 현실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현실을 말하려 한다. 그렇지만 친숙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반갑지 않은 친숙함이 무척 당황스럽다.
해답이 없는 공식이 답답하다. 하지만 작은 소득, 사소한 행복을 빛나게 한다. 조금씩 전진하고 다시 돌아가고, 반복되어도 어느샌가 이만큼 진보한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안도감이 주는 여유는 거울을 보게 하고, 거울을 보니 거울은 자신의 모습뿐 만 아니라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몰랐던가. 내가 중심에 서 있는 삶에서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있었다. 인간이 주인인 세상, 그러나 주인답지 못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
닭털 같은 나날을 보내는 세상… 일상의 공식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