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 - 사라진 바미얀 대불을 위한 헌사
이주형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풀 한 포기 구경하기 힘든 황량한 고원에서 무엇을 향해, 어디를 향해 쏘는지도 모를 곳으로 포격을 하는 장면,
역사상 정복 된 적이 없다는 전사들과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벌이는 전쟁이라고 호들갑 떠는 대중매체의 ‘전쟁 광고’.
이어지는 최신 무기에 대한 동경어린 시선으로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홍보를 전담하는 TV뉴스.
반추동물도 아닌데 먹을 것이 없어 풀을 찾아 이곳 저곳을 맴도는 아이들이 그나마 그것이라도 구해서  펄펄 끓여 독을 제거해서 먹는 장면들.

그런 곳에 수백만 달러 짜리 미사일을 퍼붓는 미국을 풍자하는 만화에서 비애를 느꼈던 일이 2001년 9월 미국이 빈 라덴을 잡는다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그 날의 기억의 단편들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미지는 끊임없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난과 전쟁의 공포에 허덕이는 사람들과 총을 들고 끝까지 저항하는 이슬람원리주의자 탈레반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축구장에서는 식전 행사로 공개 처형이 이뤄지고, 교육조차 받을 수 없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인권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그들의 문화에서 느껴지는 야만적 광신성은 국제 사회의 고립을 자초하였고, 바미얀 대불 석상의 파괴 행위에서 절정을 보여주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은 국경과 인종, 종교를 떠나서 보호되어야 할 마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한 그들의 파괴적인 행위는 국제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마치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덤비듯이 그들의 목소리는 당당함 그 자체였다. 오히려 파괴되어야 할 외세의 가치이며, 그것을 파괴함으로써 자신들의 종교적, 정치적 순수성을 과시하였다.

이 책은 이러한 국제 상황에 맞물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지리적, 역사적 의미와 문명의 탄생,파괴에 대한 학자로써의 견해를 균형 잡힌 시선으로 그려내었다. 또한 파괴 행위에 대한 정당성 또는 비난을 하기에 앞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고민과 의문점을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문명사를 다루는 책이 아닌 현재와 과거를 잇게 하면서 잊혀진 문명에 대한 자각적인 자세로 미래를 여는 의미 있는 책이라고 본다.

책의 구성의 대부분은 찬란했던 아프가니스탄의 문명에 대한 설명이다. 시간은 기원전 4천년 전까지 올라간다. 이 곳은 라운더바우트(roundabout)로써 이집트, 헬레니즘,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 문명이 교류하던 유라시아의 중심이었다. 지역성이 그러해서인지 침략자가 반드시 거치는 길목이기도 했다. 많은 문명과 사람이 흘러간 이 곳에 찬란했던 문명이 꽃피는 것은 당연하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부터 유목민 문화, 알렉산더가 남기고 간 그리스 문화, 바미얀 대불만큼이나 번성했던 불교 문화, 둘의 합작품인 간다라, 그리고 이슬람 문화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다양성과 문명의 찬란함은 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물론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파괴의 역사이다. 또 다른 문명이 꽃 피려면 이전의 것은 사라져야 한다. 흥망성쇠는 바람처럼 왔다가 가는 것이라고 역사가 말해 주듯이 문화유산도 바람처럼 세워졌다 사라진다. 무차별적인 도굴에 의한 것과 종교적, 정치적인 행위의 결과물로써…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패턴을 담담하게 이해하면서도 버미얀의 대불상 파괴 같은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책 전반에 깔린 분위기도 그러한 안타까움이 베어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묻혀있는 유적, 유물에 대한 관심을 요구한다. 이제는 문화 유산에 대한 가치를 바라 보는 인류의 시각이 많이 달라졌으므로 이전의 패턴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하며 학자들의 공명심에 일침을 가하고, 대불상 복원을 위한 막대한 예산을 다른 유적의 발굴, 보호에 쓰는 것이 훨씬 발전적이라고 글을 마친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책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문명의 파괴는 탈레반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서양은 더 심했고, 탈레반이 완전히 날려버린 대불도 그 전부터 대부분 훼손된 상태였다. 그들을 비난함으로써 우리는 그들과 다른 문명인이 되려 하지만, 그들과 다름없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은 조선 총독부 철거를 바라보는 시선이 탈레반의 대불 파괴와 동일 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믿으려 하지 않고, 우리의 역사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역사적 유물이 바로 조선 총독부였고 우리는 그것을 제거했다. 기독교인들은 단군상의 목을 쳤고, 유생은 불상의 목을 쳤다.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수많은 공산 지도자 상들이 파괴되었다. 문화 유산의 가치가 정치성, 종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진정한 가치를 볼 수 있다는 것, 이 책이 주는 강렬한 메시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