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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 - 몽족 아이, 미국인 의사들 그리고 두 문화의 충돌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윌북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갑자기 다른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엄청나게 두꺼운 매뉴얼이 있어도 평범하게 살기란 쉽지는 않을 듯 싶다. 언어, 행동, 사고, 윤리, 전통 그 무엇에도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곳이라면 더더욱 소외와 고립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행동 하나하나에는 규격이 있을 것이고, 따르지 않았을 시에는 규제가 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외국인의 유입에 가장 개방적인 나라인 미국에서 벌어진 이 책의 이야기는 만남과 충돌의 임계점을 치밀하게 파고들면서 드라마틱아이러니의 진면을 보여준다. 다문화사회가 갖는 고민과 갈등의 주요 쟁점을 맨 눈으로 살피는 ‘탐사문학의 걸작’이라는 평은 옳다.
어느 사회이건 다문화라는 말은 일반적이게 되었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들이 풍부해지면서 오해와 이해의 긴장을 늦추는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이 책에서 놀라운 것은 모두가 선의를 갖고 행동해도 뜻대로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과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도 개개인에게는 굴레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합리성은 결코 포괄적이지 않다. 각자의 합리성에 따라 자전하고 있으며 그것의 방향과 속도를 제어하려는 것은 대단히 위험 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다.
“그 누구도 리아에게선 발작 말고는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을 거야. 리아는 곧 발작이었으니까”
P420
온전한 이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 간격을 좁히는 일은 가능한 일이다. 단지 언어와 문화의 차이만으로 인식하는 정도를 논하기에는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다. 엉키지 않게 잘 섞는 방법이라는 양가적 명제의 해법에 관한 기대수준은 한참 높다. 결국 충돌이 아닌 만남으로, 국경의 유연성 만큼이나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에 관한 인류학학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기능과 역할로서의 인간을 대하는 것에 앞서 다른 것들을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이 더 없는가. 이 책을 통해 그 공백을 채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민족적 특수성을 들어서 ‘몽족 아이’의 ‘뭉족 문화’로 접근하는 방식이 과연 적합한가는 의문이 든다. 그들이 갖는 문화적 특수성 또한 누구의 시선인가. 그것 또한 제대로 된 이해를 바탕으로 인지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집단적 경험과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그들의 개인성에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책의 구성이 좀 더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해야겠다.
간질이라는 병이 갖는 이 책의 상징성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육체를 고치려는 현대적 의료기술과 영혼의 병변으로 보고 치료하려는 몽족의 희생제의 화해를 보는 듯한 구성은 심적 동요를 일으킨다. 결국엔 누구의 바람도 노력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리아의 육체와 혼이 분리되어 진 상태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볼 수 있다. 병리적 사회현상에 대한 치유책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기도 하다.
가족으로 돌아오시게. 가족으로 돌아오시게.
책의 말미에 있는 희생제의는 마치 잃어버린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처럼 울린다. 삶도 혼도 그 어느 것도 가질 수 없었던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