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하철에서 읽다가 세 정거장을 지나쳤다. 반대편으로 갈아타고 다시 읽다가 한 정거장을 또 지나쳤다. 집중력이 그닥 좋은 편이 아닌데, 귀신에 씌인 듯 책에 홀리다니...
영화를 많이 봤지만, 이 소설의 영상미는 최고 수준이다. 각 씬과 서사구조는 단순하지만 속도감 있어서 참으로 오랜만에 쭉 빨려 들어갔다. 소설을 읽는건지 영화를 보는건지, 잘 만들어진 영화는 문학을 감상하듯 읽어야 하는데, 그런 영화와 꼭 닮은 소설이다.
 
펜이 칼보다 강하던 시대가 있었다지만, 이미지가 펜을 압도하는 시대에 팬의 저력을 김언수가 보여줬다. 예전에 캐비넷을 읽다가 김연수작가와 햇갈렸었는데 이런 일은 다시는 없을 거 같다.
숨막히는 액션과 두뇌싸움, 각 캐릭터들의 생명력을 문장으로 숨을 불어넣으니까 즐거운 책읽기가 된다. 책이 재미있으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겠냐만은 그만의 스타일, 세계관은 흥미로운 구석들이 있다. 시스템과 그 안에서 몸부림 치는 인간에 대한 건조한 시선, 하지만 그 안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주목을 하다보면 애정이 가는 그런 감성, 그래도 머리는 계속 굴려야 하는 적절한 자극이 좋다고나 할까.  

권력과 자본, 명령과 행동, 설계된 죽음과 이유없는 삶의 양식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법과 질서로 둔갑한 다른 질서들을 상상한다면 딱 이 소설 속에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소설이 현실을 빗대어 말할때 가장 현실적으로 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을까.
우리가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을 그대로 옮겨놓아서?
모두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공유하여 얻게 되는 효과만을 얻는다면 뭔가 제대로 읽은 것 같지가 않다.

책의 띠지를 보면 생의 이면을 알면 어디가 지옥인지 분명해 질 것만 같다. 알고도 모르는 저마다의 사연과 변명 때문에 추악해진다라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 가볍지 않게 들린다. 이유있는 죽음도 이유없는 삶도 분명히 할때가 찾아오고야 말텐데 누가 이유에 관심이나 가질까. 삼킬 수 없는 진실에 다가가고자 할때 삶은 극도로 변화하니까. 그건 알고도 모르는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킬러인 주인공 래생은 처음으로 죽음을 결정했다.
바로 자신의 죽음을....  
가장 강력한 메세지는 바로 나의 죽음에 대한 권리를 행사함과 동시에 삶의 권리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각성시킨다는 점이다.
來生을 기약하기엔 너무 짦아서 아쉬운 점이 있다만, 그런 마무리가 있기에 완결되는 것이다.

근 며칠동안 홀쭉한 삶이 '설계자들'때문에 꽤나 살이 올랐다. 
추석 때문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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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0-09-27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카페 회원 중 한 분이 강추하시던데... 별이 다섯개!!!

라주미힌 2010-09-28 01:21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세요. ㅎ 킬러 나오는 무협지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