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거짓말에 북파공작원·고엽제전우회도 한때 피해자
진실 규명 도왔던 진보단체 공격에 “추하다”는 지적 일어
 

참여연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사건의 철저한 조사’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사무실 앞은 18일까지 닷새째 연속 보수단체의 과격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보수단체의 이런 움직임은 “정부의 발표는 언제나 옳다”는 믿음에 기초한 듯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세계 각국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정부가 언제나 올바른 주장만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런 ‘정부 거짓말’의 피해자가 비단 진보인사들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보수단체들 또한 ‘정부 거짓말’로 인한 피해자에서 예외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수단체들로부터 “가스통 할배”라 불리는 북파공작원들이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은 서로 많은 간첩과 파괴분자들을 보냈고, 남한은 육군첩보부대(일명 HID) 소속의 무장공작원을 북쪽으로 파견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는 철저히 숨겨졌다. 남한 정부는 오랜 기간 동안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거짓말’을 했다. 이들을 북쪽에 보내는 것은 정전협정 위반일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북한은 공격적이며 남한은 평화적”이라고 해왔던 선전도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무장공작원으로서 임무를 마치고 생환한 북파공작원들은 자신들의 임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국가로부터 받기를 원했지만, 국가의 ‘거짓말’과 언론의 침묵으로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이들이 국가의 거짓말을 뚫고 존재를 인정받게 된 데는 <한겨레21>의 보도의 공이 컸다. <한겨레21>은 1996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알리는 기사를 내보낸 데 이어 몇차례 북파공작원 특집을 내 이들이 실제하는 사람들임을 알렸다.


북파공작원들의 자구노력과 몇몇 언론보도에 힘입어 국가의 거짓말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마침에 국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되는 데 이르렀다. 김성호 전 민주당 국회의원은 2004년, “7·4 남북공동성명이 있었던 지난 72년까지 모두 1만여명의 남한 공작원이 북한에 파견됐으며 이 가운데 7,726명이 실종처리됐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들이 모아져 남한 정부는 북파공작원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현재 참여연대 앞에서 과격시위를 벌이고 있는 고엽제전우회, 어버이연합, 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 회원들의 논리대로라면 국가가 공식적으로 부정하는 무장공작원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북파공작원들 또한 ‘친북’이나 ‘매국’ 단체였다.

한번 상상해보자. 이들 북파공작원들이 정부가 부정하고 보수언론이 침묵하는 상황에서 국제기구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하자. 아마도 정부는 자신의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남한에서는 북한에 간첩을 보낸 일이 없다”고 강변하면서 “그들이 어느 나라 국민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때도 고엽제 전우회 등 보수단체들이 “정부가 주장하는 것은 모두 옳다”는 논리로 대응한다면 무슨일이 벌어졌을까?

그러나, 참여연대 앞 과격시위에 가장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엽제 전우회’ 또한 이런 국가의 거짓말에 의한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엽제 전우회 소속 회원들은 베트남전 참전 때 미국이 정글의 나무를 고사시키기 위해 대량으로 살표한 ‘에이전트 오렌지’로 인해 고엽제 피해를 입은 이들이다. 이들은 고엽제 탓에 신체마비, 각종 암, 호흡계 질환, 피부병, 손발부패 등의 고통을 당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오랫동안 이들의 고통과 고엽제와의 연관성을 부정해왔다. 역시 ‘거짓말’인 셈이다. 이들을 이런 ‘거짓말의 피해’에서 벗어나도록 하는데도 진보적 시민단체와 진보언론의 힘은 작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국가들이 거짓말을 한다. 최근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는데도 있다고 속여 이라크전을 일으킨 미국 부시 행정부의 거짓말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조작간첩을 경험했다. 1987년 6월항쟁의 촉매가 됐던 것도 당시 고문으로 사망한 서울대생 박종철씨의 죽음에 대한 정부의 거짓말이 들통난 것이었다.


참여연대의 편지는 이런 상황에서 천안함의 의혹을 좀더 철저히 검증하자는 것이다. 정부의 천안함 발표에 의혹이 너무 많기 때문이며, 혹 그것이 거짓이라면 그 피해는 진보나 보수를 가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또한 남한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한반도 전체, 더 나아가 동북아 평화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신도 국가 ‘거짓말’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이들이 왜 마치 국가가 말한 것은 모두 진실이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일까. 어떤 이는 이들이 보수적인 국가로부터 더 많은 보상을 바라고 그런 일을 한다고 주장한다. 혹여 그것이 진실이라면, 추해보인다. 더욱이 참여연대를 비롯한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들이 국가가 그들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할 때,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며 진실을 규명하려 노력했던 이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264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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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0-06-2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군복입고 테러급 시위하는 어르신들이 더 밉다능... 죽 쒀서 개준다고 하더니..

라주미힌 2010-06-21 00:42   좋아요 0 | URL
흐흐.. 코미디같기도 하고 비극이기도 하고.. 좀 그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