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신의 '고향'에 나오는 일부분으로 이 책과 딱 어울리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라... 바람처럼 흘러흘러 가는 곳마다 길이며 그 길은 모두에게 연결되어 있다. 멈춰있는 바람은 바람의 이름을 갖지 아니하니 역동성 그것은 생명력 자체이다. 이 책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실천하고 있는 자들의 삶의 방식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모두가 따르는 세상의 이치'를 거부하는 발랄한 '반동분자'들의 일상에는 풍요로움과 기쁨이 가득하다.
그런데 개개인의 가치와 독립성을 중시하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고질적 획일화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너와 나의 경계를 구분짓고, 손에 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몸짓들은 조류독감마냥 막기 힘든 것인가. 저자는 이에 대한 면역력을 지식의 욕구, 앎의 기쁨, 코뮌주의, 노마디즘, 체력이었다고 씩씩하게 고백했다.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닌 스스로의 요구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익히며, 타인과의 '지적 사랑'을 공간적 한계를 깨고 외부로까지 영향력을 넓히기 위하여 시간과 공간의 성숙을 이끌어내는 작업들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은 했다. 경계없는 삶이 주는 행복에 불안감은 없었을까? 그러나 저자의 독특한 계산법은 언제나 흑자인 것 같다. 사람과의 연대와 지적 성숙만큼 커다란 이익은 없다는 논리. 물질은 유한하나 정신은 무한하다.
지식의 횡단, 체력과 유머의 멀티태스킹. 사상과 사상의 교접. 그들이 담을 수 없는 것은 없는 듯하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 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보고 보리라.' 옛 선조의 시조에서 처럼 집착, 경계없이 둘러보면 한없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것을 우리는 왜 잊고 사는지. 학문 뿐만 아니라 생활의 발견은 분명히 내 안에서, 내 위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것일 것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모유 먹이기 운동본부'가 아닐까라는 추측도 했었지만, 그들의 연구공간에서는 가진것 없고, 식욕은 왕성한, 그리고 앎의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자들의 위대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