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1 (양장) - 제1부 개미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덧 이 책이 출간된지 10년이 넘어버렸다. 시간이 흘러도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소설로써의 재미와 페로몬처럼 강렬한 메세지는 여전한 것 같다. 걷다가 무심결에 밟히는 개미라도 그들 나름대로의 세계가 질서있게 존재해 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의식하고 있지는 않다. 인간의 오만함이랄까. 작고 보잘 것 없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나의 힘에 무기력한 것에는 한없이 잔인해지는 습성은 이미 무의식 속에 굳게 자리 잡은 듯 하다. 지구에 서식하는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던 인간이 지구와 자연을 소유로 생각하고 그것을 다루고 이용하려고만 하는 욕망은 인간을 지구의 암적인 존재로 성장하게끔 했다. 2050년 쯤이면 지구상의 생명체의 25%가 멸종될지도 모른다는 과학잡지에 실린 기사들은 자연의 심각한 경고의 메세지임에도 불구하고 환경단체의 목소리에 실린 사회를 움직일 만한 힘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경제와 현실의 문제에만 집착하게 만드는 사회구조가 문제인 것일까?

그래서 이 책이 그토록 인기가 있지 않았나 싶다. 관심 밖의 대상에게서 발견한 의미있는 존재와 가치 그리고 함께 공유해야 할 생존법칙. 인간 중심의 사고와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으로 보지 못하는 세계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한 세계와의 교류는 관념의 틀을 깨는 것부터 시작한다. 왜냐하면 문명과 문명이 만났을 때의 충격과 혼돈보다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닫힌 마음이 더욱 커다란 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자주 나오는 성냥개비, 숫자 수수께끼는 뒷통수를 탁탁 치게하면서 관념의 변화를 강조한다.

소설 '개미'는 정찰 개미들의 압사사건을 계기로 두 문명의 충돌을 보여주고 그 과정 중에 생기는 사건과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이끌어 간다. 개미의 시선으로 개미 사회를 그려내고, 인간의 시선으로 인간 사회를 그려내는 작업은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미 관련 서적을 많이 참고했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게 묘사한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한계가 눈에 보인다. 개미 사회를 그려냈지만 저자의 상상력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사고의 틀 안의 것임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2권 3권으로 이어지는 음모와 분열, 전쟁.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문명이 만나는 것은 모험이였고, 그것은 분열과 무질서로 이어진다. 무지와 선입견에 의한 막연한 공격성, 신격화, 오해를 충분히 겪은 후에 얻은 깨달음은 초개체 집단인 개미들에게 자아를 인식하게 만들었고, 몇몇의 인간에게 또다른 문명을 인식하게 했다. 무질서가 이끌어낸 새로운 질서인 것이다. 때로는 추리소설처럼 사건을 이끌어가고, 한편으로는 과학소설답게 인공지능 로봇을 등장시키며, 상상력으로는 개미 사회를 그림그리듯 표현한다. 신과 동양사상이 등장하고, 인간에 대한 증오로 원정을 떠나는 개미들을 십자군에 비유하는 것들 모두 각각의 색을 가졌지만, 통일성있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작가의 글재주가 놀랍다. 늘 열어 놓았던 창을 닫고, 다른 창을 열어보는 맛이 아주 좋은 소설이라는 점은 앞으로도 쉽게 지워지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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