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과 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3 (양장본)
전경린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코피가 기도를 타고 흘러들어 갈 때의 피비린내 그리고 쓰라림.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아니기를, 보이지 않게 감추려고 고통의 향이 진동하는 삶 앞에 '여자'는 서 있다. 권위로부터의 해방, 금기로부터의 자유, 운명을 향하여 꽂은 롱기누스의 창은 '여자'의 가슴으로 뿌리를 내리고 죽어간다. 이 아찔한 순간은 감각의 언어에 의해 새겨지고, 정념의 정염으로 타오른다. 거울에 비춰진 자아의 분열이 현실의 이름을 더럽히고, 운명의 질시를 소원하여 가시밭이 되었지만, 벗겨진 발에 고인 피는 한 인간의 영혼을 씻어내리고 고결한 사리로 승화한다.

각 단편들은 아픔을 가진다. 그 아픔은 단편들을 잇게 하는 매개체가 되고, 그것이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여자. 존재가 가지는 의미, 인간으로써 가지는 기본적인 욕망이 서서히 무너졌을 때의 그 고독과 마지막 자존심이 서슬이 퍼런 칼날이 되어 쿡쿡 찌른다. 그리고 빈손의 무게 만큼이나 가볍던 삶들이었지만, 진한 고통의 향의 무게는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그러나 악몽처럼 집요하게 다가오는 것들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힘은 고통에 바로 중독되어 마법처럼 잊어버리는 것뿐. 그것이 고통의 사랑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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