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새의 선물>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더 이상 성장할 것이 없어 밑천이 드러나는 것도 더 빠르던가. 고독으로 말라 버린 삶.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고독뿐인듯 하다. 허무적이고, 회의적인 그녀의 시선 그러나 더욱 억세며 강인한 삶의 의지가 느껴진다. '나는 지금도 혐오감과 증오, 그리고 심지어는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극복의 대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곤 한다'

요즘에 읽게 된 소설들은 상당수가 6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이었다. 읽다보니 성장소설이었다. <새의 선물>은 액자형 소설로서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삶이 세세하고, 재미가 있다. 여기서 재미란? 삶이 삶으로 느껴지는 재미. 그들의 삶이 피부에 스며드는 수분처럼 촉촉하다. 애증, 허위, 순수, 절망, 고통 그 모든 것이 우리 삶이기에 비록 거칠더라도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철없는 이모, 다른 말로 표현하면 순수한 이모의 편지 한장을 받아 보고 싶기도 하고, 미스 리의 유혹도 느껴보고 싶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으며 당장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만 지니고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해왔다. 삶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삶에 성실하다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아이러니도 아니다.' 너무나 일찍 삶을 알아버린 30대의 주인공에게서 느껴지는 연민은 눈보라를 맞으며 중절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이모의 눈동자만큼 쓸쓸하게 차오른다.

'그가 돌아보는 순간 그 모습은 내 눈 속에 그대로 멈춰버린다. 그리고는 찰칵 하는 소리에 이어 현상액에 담가지며 거기에서 물기를 머금고 빠져나와 커다랗게 확대된 뒤 네모난 테두리를 두른 채 내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가슴에 스며든 그 사진액자를 언제까지나 소중히 간직하겠다는 약속을 하기 위해 나는 두 손을 앞가슴에 모은다.' 시처럼 쓰여진 이 소설에서 발견한 비루하지 않고 차갑지만 뜨거운 마음은 내 마음에 그대로 멈춰버리고, 찰칵 소리와 함께 액자에 담겨 오랫동안 간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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