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부터가 낯설게 느껴진다. 싱아? 싱아가 무엇일까. 누가 먹었냐고 물었으니, '먹는 것이겠구나'하고 짐작만 될 뿐 그것의 실체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싱아에 대한 궁금증은 나로 하여금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장점을 십분 발휘하게 하였고, 웹에서 싱아의 사진을 잽싸게 찾을 수 있었다. 자연과 너무 동떨어져서 살아서일까? 평범한 잎사귀와 가느다랗고 곧게 뻗은 줄기... 화단에 있는 식물과 특별히 달라 보이질 않는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가지고 있는 시대적 괴리감으로 갈라서게 된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작가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 결코 우리들의 것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마지막 문장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 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 뿐이야.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이 갖고 있는 의미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본의 식민지에서, 2차 세계대전과 민족상잔의 비극까지 우리 세대 이전의 역사를 그녀는 증언해야만 한다. 이 땅에서 벌어진 사실들이 세월의 그림자에 가리워저 잊혀진다면, 그것 또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개인사를 통하여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모습을 사실적으로 편안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녀가 보아 온 가족들, 이웃을 통하여 식민지, 전쟁, 가난, 배고픔을 겪어보지 못한 우리를 하나의 고리로 묶어 버린다. 특히 가족들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들은 잔잔한 재미를 더해 준다. 거친 세상을 살면서 이웃들에게는 강인하고, 거만한듯한 품위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아들에게는 한없이 약한 어머니의 이중적인 모습에 거침없이 비판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애틋한 사랑으로 비춰진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오빠를 동경하는 마음, 이러한 시선들을 통하여 그 시대의 그 모습들을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다.

시대를 읽는 창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낡은 기억들로 치부할 수도 있고, 그들의 기억에 낭만적 공감대를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들만의 기억으로 남겨놓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와 시련, 상황들은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도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으며, 예를 들면 강제로 징용되어진 위안부 할머니나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인 비전향 장기수 등 우리는 아직도 끝을 만나지 못했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는가? 아니 왜 사라졌는지는 우리에게 물어야 할 질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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