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 선거의 결과를 보면, 일희일비가 엇갈린다는, 다소 진부한 표현부터 떠오릅니다. 긍정적 측면부터 보자면, 일단 "북풍"과 같은 정치 쇼들의 약발이 더이상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부터 참 반가운 일입니다. 6.25의 불행한 세대는 물론이고 1968년의 이북 정권의 실패된 "빨치산식 공격" 작전을 목격한 세대까지만 해도 좀 달랐지만, 이제 20대나 30대들에게는 "북한 도발"보다 그 "도발"의 가능성을 재탕삼탱 이용하면서 현실보다 백배, 천배로 "뻥튀기"하는 남쪽 정치꾼들은 더 위험해 보입니다. 지금 정권은 1970년대형 토건형 부양책에다가 1970년대를 연상케 할 정도의 대북대결형 국민통합정책을 추진하는 셈인데, 그게 1970년대에 유치원에 다녔거나 1970년대를 보지도 않은 사람들에게는 말그대로 "과거의 망령"처럼 느껴지죠.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만, 이제 당로자들이 북한을 이용하는 저질 정치쇼들의 "비용 대 효력" 효율성이 낮다는 점을 간파하시어 더이상 "북한 납치범"들의 유령들과 싸우다가 결국 불명예 퇴장되어버린 고이즈미나 부시의 흉내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뭐, 직업적으로 머리회전이 빠르신 분들이니 알아서들 잘 하시겠지요?
 
그런데 이와 동시에 더 한 가지 실감한 것은, 한국 자유주의자 (한명숙씨나 유시민씨 형의 "온건" 부르주아 정객)들의 엄청나게 강한 "소생 능력"입니다. 노무현 정권 말기 같으면, 비정규직 양산과 성장률의 경향적 저하, 부동산대책 실패, 그리고 한미FTA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망동으로 "노빠" 그룹은 거의 고립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시는지 모르지만 그 때는 "놈현스럼다" 같은 단어들이 사전에 수록될 뻔한, 그런 분위기이었지요. 경제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아 비정규직 양산과 내수 저하, 그리고 중소기업의 구조적인 고질적 위기와 해외경기에의 의존 등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신 듯한 분들은, 사실상 "개혁"이라는 양두구육형 불량 정치상품의 인기 폭락으로 정치 시장 퇴출 위기에 몰려 있었지요. 그런데, 약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이들의 정치자본이 거의 회복된 셈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이 사실상 전혀 증가되지 않아 가난의 대물림이 일상화된 반면 "부동산 부자", "주식 부자"들의 호강이 날로 심해졌다는 것도, 국가의 고용자측 두둔이나 단순 무관심으로 분쇄 당한 고속철도 여승무원이나 기륭전자의 비극적인 세계사상 최장기 파업들도, "개혁주의자"들의 극단적인 무능과 비겁함으로 인해 끝내 없어지지 않아 살아남은 국보법도, 다 망각되거나 "용서" 받은 모양이었습니다. 거의 사냥 수준의 탄압을 당해온 쌍용 파업 노동자와 달리 별 방해없이 그 정치 활동을 해온 "개혁" 판매업자들이 20여년 전처럼 "독재 대 민주"라는 구도를 잡아 매우 편안한 중상층 상류의 생활을 해온 자신들을 "민주 투사"처럼 치장했는데, 사회의 상당부분은 이를 액면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자유주의자들의 패러다임에 이끌리게 된 그 "시민 사회"의 압력이 얼마나 거세기에 심상정씨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노동운동가까지도 이라크 파병을 수긍한 사람에게 표를 주라 하면서 퇴장하게 이른 것입니까? 그러면 저들이 정치시장에서의 위치를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회복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이 질문에 상당수 독자들이 "대북대결과 4대강 망동 등을 더이상 좌시 못한다 싶은 수많은 이들이 될성싶은 자유주의 정치인들에게 표를 모은 게 당연한 게 아니냐" 반문할 것입니다. 그건 다 맞는 이야기인데 노회찬과 같은 진정한 진보주의자들이 "나야말로 이명박의 진정한 대항마"라는 의식을 유권자들에게 심지 못한 이유가 뭐냐는 건 제 질문의 핵심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상투적인 답 역시 "언론 외면, 당세 미약, 풀뿌리 조직 미비" 정도일 테고, 그것도 다 맞는 말이지만, 저는 거기에다 더 몇 가지 첨가하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자유주의 정치인들을 받들고 그 담론을 생산해주고 그 메시지를 전파해주는 "시민 사회"의 핵심들 - 주요 비정부 기구들의 지도자나 상당수 교수, "온건한" 조합 관료, 그리고 언론인 등 - 이 "노빠", "유빠"와 같은 그룹들의 정치시장 점유율 제고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한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20대 "백수", 즉 노동시장 진출 실패자 등 사회적 하층은 독립적인 조직을 갖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정치,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젊은 가난뱅이들이 아나키스트가 되어 하나의 유력한 사회, 정치적 담론의 자장 안으로 흡수될 수 있는 희랍과 너무나 보수적인 "저강도 민주" (케빈 그래이 교수의 용어) 국가 대한민국은 그러한 차원에서는 천양지차를 보이죠. 국내 하층은 결국 정치, 사회적으로 중산층에게 종속돼 있는데, 중산층은 "반MB연대론"을 생산, 전파하는 NGO주역들과 교수, 기자들의 그 점잖은 문화 자본에 잘 이끌리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현실적인 자기이익 계산의 차원에서 노회찬에게 정직한 한 표를 던질 것 같은 사람들 - 예컨대 살인적 등록금에 약탈 당하고 졸업후에 입장 장벽이 계속 높아지는 노동 시장에 진압조차 못할 가능성이 높은 대학생, 특히 "비문명대" 대학생 -마저도 결국 자유주의자들의 유효기간이 지난 정치상품의 구매자가 됩니다. 그 광고의 포섭력은 그 정도로 강한 것이죠.
 
그 포섭력의 한계는 도대체 어디일까요? IMF충격으로 노동운동이 결국 정치화를 결정해 민노당을 창당한 10년 전의 일을 회상해보면 하나의 관건이 경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천문학적인 (주로 토건에의) 부양책과 극소수 재벌들의 수출 성과 지속으로는 토건, 수출형 경제는 아직까지 그럭저럭 굴러갑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유럽 준주변부 위기, 나아가서 국가 채무의 위기 등으로 세계 경제 상황이 전반적으로 악화돼 장기 공황이 본격화되고 주요 수출시장들부터 본격적으로 흔들리게 되면, 몇 년후에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나라빛 늘려 성장률 2-3% 달성하지 못하는, 그런 임계 상황이 온다면 매우 대대적인 복지 증강은 수많은 서민들에게 사활의 문제가 될 것이고, 젊은이들의 소극적인 절망은 그리스형 적극적 절망, 즉 대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절망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상황에서는 매우 대폭적 복지 확대를 도모하면서 근본적으로 토건, 수출의존형 경제 전체를 뜯어고치려는 진보신당형 훨씬 더 강한 설득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일단 인내심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는 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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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6 0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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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6 12: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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