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될 가능성도 없는데 뭐 하러 나와요?" 택시 기사가 대뜸 이렇게 묻는다. 시큰둥하게 대답해 주었다. "당선될 사람이 당선될 텐데, 투표장에는 뭐 하러 가세요?" 선거가 어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의 당선 확률을 더 높여주는 제도였던가? 내게 선거란 그저 내 소중한 표를 마땅히 당선 되어야 할 후보에게 던지는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이 상식이 이 사회에서는 마치 이해 불가능한 고차방정식처럼 여겨지나 보다.


최선보다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구조. 그 속에서 당선된 차악은 곧 최악으로 드러나고, 낙선한 최악은 그 틈을 타서 차악의 행세를 하게 된다. 다음에 선거가 오면, 유권자는 또 다시 최선보다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 이로써 차악과 최악을 오가는 악순환의 고리는 영원성을 획득한다. 이 반복이 행여 지루하게 느껴질까 봐 이 폐쇄회로의 관리자들은 선거 때마다 유권자의 긴장감을 고조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펼쳐 보여준다.


고약한 것은 최선을 향해 사퇴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자신의 표를 당선이 가능한 후보에게 던지는 것은 전적으로 유권자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남들의 표마저 자신의 선택에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나마 양심이 있는 이들은 "미안하다. 다음에 찍어주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것이 그들의 진심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진심은 결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4년 후에도 그들은 변함없이 말할 것이다. "다음에 찍어주겠다."


물론 그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이 정권 하에서 당해 보니,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차악이라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그 차악 다음에는 또 다른 최악이 찾아올 것이다. 그것을 뻔히 알기에,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차악과 최악의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내는 것이라 믿는다. 그것도 지금 당장. 왜냐하면 '4년 후'는 무지개와 같아서 아무리 쫓아가도 '4년 후'의 자리에 놓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노회찬 후보의 장외 토론을 보았을 것이다. 아직 보지 못한 이들은 지금이라도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누가 진정한 대안인지 판단해 보라. 그리고 각자 그 판단에 따라 자신의 표를 던지라. 너저분한 공학적 계산은 그 쪽으로 도가 튼 정치가들에게 맡겨 두라. 유권자들이 고려해야 할 변수는 딱 한 가지.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선거란 그 판단을 내리는 의식이다. 원칙은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은 그 어떤 잔머리의 계산보다 더 정교하고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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