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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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이 피부 속까지 파고드는 시절이다. 피부만 안 좋아진 게 아니다. 흰머리가 늘고, 감기도 자주 걸리고, 계절에 민감해지고, 다리도 쑤시고, 배도 나오고, 얼굴은 동그래지는 등 아저씨라고 불리는 사람의 몽타주를 그리면 연상되는 모습으로 변태하고 있다. 껍데기는 껍데기에 불과하겠지만, 인두겁이 낡고 헤지는 세월의 무상이 잔상처럼 미래를 그늘지게 한다.
여기저기 내가 비춰지기만 하면 낯설다. 낯선 게 두려운 것일까. 어떻게 굴러왔는지를 돌아보면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를 모른다는 게 위협적인가. 남의 것만 같은 비루한 삶을 누가 예견할 수 있나. 그것이 설마 내 것이 아니기를 바라기엔 뭔가 무기력하다. 이리저리 치이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솔직히 편하다. 인간 모두가 최종적으로 이르는 지점은 같으니까.

막장 드라마 같은 이 소설은 꼬일대로 꼬인 시나리오를 충실히 이행하는 배역들을 모아놓고 식구라고 해놨다. 있을 법하다. 톨스토이님 왈 “행복한 가정은 모두 똑같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 라고 하지 않았나. 모두가 바라는 행복 모델은 비슷하고 불행할 요소는 다양하다. 그렇기에 행복으로 가는 길은 비좁고, 불행으로 가는 길목은 주작대로로 펼쳐져 있어서 그런가. 하여간 무능력하고 나이든 식구가 모여서 살아가는 모습은 코믹에 가깝다. 어찌나 비열하고 무모하던지. 저마다의 상흔을 도드라지게 보이며 발톱을 드러내는 놓는 장면장면 마다 이건 하나의 서커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고 싶은 뒷담화가 넘치는 곶간을 뒤지는 재미라고나 할까. 기기묘묘한 일들을 보며 키득거리는 건 아마도 극대화된 불행에 대한 자신의 안도감에서 나온다.

우린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거리를 두고 싶지만, 거리를 둘 수 없는 공동체로 떠밀려 들어왔고, 서로의 무능함과 불행이 조금이라도 내 몸에 스칠까 경계한다. 어느새 나이는 먹고 그것이 서로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때 우리가 가진 출구를 애타게 찾아 나선다. 노인에게 잡힌 다랑어인지 그걸 노리는 상어인지 뭐가 됐던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했던 노인이던지 인생역전 만루홈런이 없다는 걸 일찍 깨닫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맘마… 세상을 향해 했던 첫마디 이상의 삶은 과연 있을 것인가. 오늘도 세끼의 밥을 먹고 엔진은 돌아간다. 멈추거나 움직이거나 어차피 둘 중 하나니까. 고민은 1/2로 줄어들어야 할 덴데 세상은 날로 복잡해지는구나. 고령화가 문제냐. 고령화의 문제냐, 아니면 고령화가 문제여야 하는가. 소설처럼 마무리가 어려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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