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100쇄 기념 영인본'에 추천사를 쓴 인연으로 필자가 진행하는 방송에 조정래 선생을 모셨을 때, 제일먼저 이렇게 물었었다. “새로 내신 책 제목이 왜 ‘황홀한 글 감옥’ 입니까. 감옥이란 자고로 고통스러운 곳인데, 그곳이 황홀하다니요?”.

 

이에 대한 선생의 답변은 “‘태백산맥’, ‘오 한강’, ‘아리랑’, 이렇게 세 편의 대하소설을 쓰는 동안 20년간 하루에 원고지 30장씩을 매일매일 메워나갔다. 알다시피 작가의 창작의 고통이란 뼈를 깎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20년간을 뼈를 깎아온 셈이다. 반대로 하루하루 쌓이는 원고지를 볼 때마다 다른 한편 황홀함이 생겼다. 글이 써나감에 따라 그 황홀도 점점 더해졌다. 그러니 어찌 그곳이 ‘황홀한 글 감옥’이 아니었겠는가”라는 것이었다.

 

이 책에는 이런 질문과 답들이 담겨있다. 대학생들이 선생의 문학에 대해 질문을 하고, 선생이 그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이다. 그러니 어찌보면 자전적 에세이가 되고 어찌보면 대 소설가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는 문답집이 될 수도 있다.

 

책에는 다양한 질문이 들어있다. 선생의 문학관, 인생관, 역사관, 심지어 연애와 삶에 대한 이야기까지 망라한다. 하지만 이 책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문학에만 정진을 해온’ 작가 조정래의 깊은 내면세계를 구경, 혹은 염탐하는데 있다. 대개 작가들은 작품속의 주인공들과 달리 자신의 세계에 타인이 틈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작가로서의 작품세계와 자신의 세계관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정래의 ‘활홀한 글감옥’은 그의 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유년시절, 법명을 받고 조계사에 승적에 입적햇던 청년기, 시인 김초혜와의 사랑, 그리고 광주 민중혁명을 거치며 절망과 좌절과 절망을 맛보아야 했던 지식인으로서의 고통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물론 그 여정에는 전후 한국문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품 ‘태백산맥’의 저자로서 사상적 검열에 얽힌 얘기도 피해 갈 수 없다. 책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일, 우익과의 충돌과 위협, 그 과정에서 살아있는 작가가 되기위해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까지 가감없이 들려주고 있다.

 

조정래는 문학에 정신이 있고, 서사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작가다. 그리고 문학에는 개인의 체험이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작가다. 문학에 개인의 체험이 들어가면 세계관이 좁아지고, 문학이 유희와 오락으로 전락하면 존재의 가치가 사라진다고 믿는 작가다. 대신 스스로도 그만큼 엄격하다. 그는 문학이란 최소한 시대정신과 당대성을 가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의 글쓰기는 ‘장좌불와(長坐不臥)’ ‘동구불출(洞口不出)’의 수행을 연상시킨다, 그 스스로 이 책에서 농담처럼 자신은 20년 참선을 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엄격한 작가로서의 자기관리의 바탕이 없엇다면 태백산맥은 아마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그가 문학에 대해 말하는 대목들은 빨간줄을 두 번 세 번 그어가며 읽을만 하다.

 

그는 자신의 ‘진보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진실만을 말하는 작가는 필연적으로 진보적일 수 밖에 없다. 또 기득권을 향하는 보수세력과는 갈등하고 맞설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소설의 비판정신이며 휴머니즘의 실현이다. 그러니까 진보작가의 길은 조금은 성직자의 길이기도하고, 조금은 철학자의 길이기도 하고, 조금은 개혁가의 길이기도 하다”. 즉 ‘진실을 말하는 한 작가는 진보적 일 수밖에 없으며, 만약 그 반대가 있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규정을 지어버리는 셈이다.

 

이어 그는 “종교는 말해서 안되는 것을 말하려하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학은 말 할 수 있는 것만 말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문학이며 그 반대는 역시 문학이 아닌 것이다.

 

조정래다운, 조정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선생은 일전에 ‘이문열 작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가 가는길과 내가 가는 길은 다르다’고 말한바 있다. ‘옳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길이 다르다는 의미다. 그는 책에서 ‘빅톨 위고’처럼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회 역사의식을 문학성과 가장 조화롭게 형상화한 모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빅톨 위고’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하며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옹호하는 작가’였고, 그보다 빛나는 작가의 삶은 없었다.

 

그의 이런 자세를 ‘엄숙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에대해 그는 “말초적인 이야기, 지엽말단적인 이야기를 1인칭으로 중언부언해가며 자칭 예술의 극치에 취해있는 것도 나쁠것 없다, 예술은 다양하다. 그러나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간은 혼자일수 없고 서로관계를 맺는 존재이며, 그 관계의 얽힘과 섥힘이 사회이고, 그 속에 벌어지는 문제적 이야기를 형상화하는 것이 소설이다. 이 의식을 굳건하게 세우고 있으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어떤 소설을 써야 할지 길이 보인다”라고 일갈한다.

 

이 책은 이렇게 인간 조정래, 작가 조정래의 ‘어제와 오늘’을 모두 말하는 책이다. 문학에 관심이 있거나 태백산맥을 밤새워 읽은 기억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 한권으로 인해 그야말로 황홀한 독서체험을 선물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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