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 할인매장에 알록달록한 파자마 차림의 여성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쇼핑카트를 끌기도 하고, 매장 한중간에서 베개를 베고 드러눕기도 하다가 한마디 말을 남기고 유유히 계산대를 빠져나온다. “잠 좀 잡시다.” 뒤늦게 할인매장 경호원들이 달려왔지만 여성환경연대 회원들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 대형 할인마트의 24시간 영업을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했다.



여성환경연대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가슴이 뜨끔했다. 사실 지난해 이맘 때 홈플러스 부천 여월점에 견학을 갔다. 여월점은 태양광·풍력 발전시설에다 LED 조명, 형광등 밝기 조절, 중수 이용 등 건물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에너지 절감과 친환경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탄소발자국관리시스템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견학을 다녀온 후에 할인마트의 기후변화 대응 사례로 홈플러스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경솔한 행동이었음을 반성하게 되었다.

올해 내내 홈플러스는 대형 할인마트의 24시간 영업을 주도하고, 동네 골목까지 진출한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지역 소상공인들과 갈등을 빚어왔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홈플러스는 여월점 ‘그린스토어’를 통해 투자금액보다 훨씬 많은 광고 및 마케팅 효과를 얻었다고 하는데, 어찌 보면 나도 일조를 한 셈이다. 대형 할인마트의 24시간 영업은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비할 뿐만 아니라 지역소상인들의 생계도 위협한다. 아무리 태양광발전기를 달고, LED 조명을 설치한다 한들 24시간 영업에 드는 전력량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여성환경연대가 펼친 ‘파자마 퍼포먼스’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할인마트에서 밤을 새워 일을 하는 여성들의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성 노동자들의 잦은 야간 근무는 신체 호르몬 분비를 교란시켜 유방암을 일으킬 수 있다. 인하대 임종한 교수에 따르면 우리 몸에서 암·당뇨 등을 예방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주로 야간에 잠을 잘 때 분비되는데, 야간 근무를 하게 되면 이 호르몬이 부족해 유방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덴마크에서는 최근 장기간 야간 근무자의 유방암을 직업병으로 인정했고,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 근무를 발암요인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속도 사회’ 한국은 거꾸로 간다. 백화점 영업시간은 연장되고, 대형 할인점은 24시간 영업 경쟁에 나섰다. 심지어 연중무휴로 영업을 한다. 기업에서는 ‘소비자의 편의’ 때문이라는데, 실제로는 할인점이 24시간 영업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밤에 쇼핑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속도와 편리를 추구하는 사회이기에 이렇게 곳곳에서 불을 환히 밝히고, 밤을 새워 일하고, 공부하고, 먹고, 쇼핑을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삶의 방식을 바꿔야 지구도 구하고 건강도 지킬 수 있다. 소비자들은 한밤 대형 할인매장 이용을 줄여야 하고, 홈플러스도 ‘그린스토어’를 자랑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24시간 영업’을 중단해야 한다. 홈플러스를 비롯한 모든 기업들이 내세우는 ‘지속가능경영’에는 소비자와 노동자들의 삶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배려도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1031802385&code=9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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