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어. 역사는 언제나 긴장을 요구하지. 긴장을 먹거리로 삼으면 키가 크지만 그렇지 않으면 키가 크지 않아. 한자말로 하자면 ‘발육부진’이 된다 이거야. 좌절과 절망 투성이인 내 이야기를 글로 쓴 까닭은 요새 젊은이들에게 좌절과 절망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역사의 실체를 읽어보라고 하기 위해서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76)이 자서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를 펴냈다. 한겨레신문에 3개월간 연재했던 글들을 새로 다듬어 엮은 것이다. 17년째 여름이면 입고 다닌다는 검정색 한복 차림으로 29일 기자들과 만난 백 소장은 ‘영원한 거리의 싸움꾼’이란 별명에 걸맞게 거침이 없었다. 그는 “내 얘길 듣고 발을 동동 구르던 젊은이들, 내가 쓴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를 읽고 눈물 흘렸던 세대가 이제 40~60대가 됐는데 다 어디 있냔 말이야. 이 늙은이 백기완이는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같이 읽고 같이 좀 울자 이거야”라고 말했다.

백 소장은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기개만은 잃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해 뜨거운 가슴과 단단한 주먹 하나로 운동에 뛰어들었던 청년 시절, 함석헌·장준하·문익환 등 수많은 재야인사들과의 일화, 1987년 ‘민중대표’로 대선에 나섰던 이야기 등 굴곡진 대한민국 현대사에 맞서 살아온 자신의 일생을 이 책에 오롯이 담았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영어단어나 한자어를 쓰지 않고 순우리말로만 쓰여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괄호가 많이 등장한다. ‘갈마’(역사), ‘굴묵’(책), ‘달구름’(세월) 하는 식이다. 시인이면서 ‘달동네’ ‘동아리’ ‘새내기’ 등 요즘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들을 지어낸 작가로서의 상상력이 총동원됐다. “그늘에 가려지고 땅에 묻히고 그런 우리 무지렁이들의 말들이 엄청 많거든. 사전이라고 있지만 한줌 모래를 쥔 것처럼 얼마 안돼. 그늘에 가려지고 땅에 묻혔던 무지렁이들의 낱말들을 많이 끄집어내기도 하고 일그러진 것들은 펴보기도 했어.”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지금도 파업현장이든, 집회현장이든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부르면 달려가는 백 소장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빼놓지 않았다. “내가 이명박 대통령이 대학 1학년일 적부터 알아. 젊은 사람이 대통령 하겠다는 것에 뭐라고 하겠어. 그런데 진짜 내 양심에 따라서 안되겠다고 하는 것은 안되는 것이야. 용산을 보라고. 사람을 저렇게 죽여놓고.”

죽기 전에 우리말과 민중해방사상의 뿌리를 정리하고 싶다는 그에게 묘비에 어떤 글귀를 남기고 싶은지 물었더니 ‘비문(碑文)’이라는 자신의 시 한수를 읊었다. “익은 낱알은 죽지 않는다. 땅으로 떨어질 뿐이다. 산새, 들새들이여. 낱알은 물고 가되 울음은 떨구고 가시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9291804335&code=1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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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9 19: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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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0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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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0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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