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싸움


오늘 언론인들의 싸움 속에서 ‘언론 장악’이라는 걸 무슨 비윤리적이고 파렴치한 일처럼 말하는 건 보기 민망하다. 언론 장악이야 어느 정권이든 하는 것이다. 극우정권이든 자유주의 정권이든 혹은 좌파 정권이든 정권을 장악한 세력이 주요한 제도 언론을 장악할 수 있는 한 장악하는 건 올바른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테면 정연주 씨나 최문순 씨가 이명박 정권에서 KBS나 MBC 사장을 맡을 가능성은 있는가? 뒤집어 말해서, 오늘 이병순 씨나 구본홍 씨가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에서 KBS와 YTN 사장을 하는 걸 상상할 수 있는가? “이명박이 언론 장악을 한다”는 말 자체부터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언론장악을 전제로 하는 말인 것이다. 낙하산 인사인가 아닌가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 차이는 그런 경향성을 뒤집을 만한 차이는 아니다.
핵심은 ‘언론 장악의 비윤리성’이 아니라 언론이 어느 세력에게 장악되는가, 어떤 계급의 편에 서는 언론이 되는가, 이다. 이렇게 말하면 오늘 이명박의 언론장악을 비판하고 싸우는 사람들은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라고 할까?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정의감에 찬 얼굴로 자신들이 언론을 장악하면 인민의 언론이 되고 이명박이 언론장악을 하면 부자와 재벌의 언론이 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언론을 장악했던 지난 10년 동안 그들은 정말 인민의 편이었던가? 그들은 줄기차게 진행된 신자유주의 개혁을 반대하고 저항했던가? 조중동의 성원들과 경쟁하고 반목했지만, 그들 역시 부자와 재벌의 편이 아니었던가? 몇몇 지나치게 불거지는 일들에 대해 보인 의미있는 성과들도  그들의 성과가 아니라 몇몇 결기 있는 기자나 피디의 개인적 용기가 만들어낸 행동이 아니었던가?
물론 그들은 그들의 적에 비하자면 얼마나 훌륭한 언론인들인가. 그 명백한 차이와 상대적 자긍심을 인정한다. 그들 입장에서 오늘 싸움은 저놈들이 장악하는가 우리가 장악하는가의 절체절명의 싸움이라는 것도. 그러나 대다수 인민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들의 편에서 생각하는 좌파의 입장에서 그 싸움은 저놈들의 싸움도 우리의 싸움도 아닌 ‘그들의 싸움’일 뿐이다.
어렵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맥빠지게 하려는 게 아니다. 완고한 계급주의로 현실의 싸움을 함부로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들의 싸움이 힘을 얻길 바란다. 그러려면 그들의 싸움이 그들만을 위한 싸움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말한다. “그래도 최소한 언론이 극우 세력에 넘어가는 건 막아야 하는 게 아닌가.” 백번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극우세력에 넘어가는 걸 막는 싸움이 결국 그들의 이해로 귀결되어선 안 된다.
나는 그들이 인민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기 전에 그들 자신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언제나 인민들에게서 ‘기자님’ ‘피디님’이라 불리는 그들은 정작 인민들에게 뭘 했는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그들은 언제나, 특히 그들이 언론을 장악했던 지난 10여년 동안, 인민들의 지지와 격려로 그들의 힘을 유지해왔지만 단 한번도 제대로 인민의 편이었던 적은 없음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성찰하기 바란다.
그런 인정과 성찰이 그들의 싸움을 훼방할까? 천만에. 오히려 그런 인정과 성찰이야말로 그들의 적으로부터 그들의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하고 훨씬 더 많은 인민들이 그들의 싸움을 지지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인민들이 그들의 싸움을 더 열렬히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그들이 저놈들보다 나은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온전히 내 편이라는 생각도 안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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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7-1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인정과 성찰이 그들 스스로하면 좋지만...그러기가 힘들다는 것 아닌가하네요. 인민들의 견인이 문제인데... 그들도 이미 거대한 신성가족을 이루고 있을텐데...성찰하지 않는다고 인민들이 미디어싸움을 하지 않을건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헤게모니 싸움일 것 같은데요..갑자기 헷갈리네...

라주미힌 2009-07-16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이 다중이 아니라는 증거인지도 모르겠어요.
누가 상식을 점유하느냐는 싸움에서 늘 밀리니 .. 이거 원.
힘들더라도 바르게 가는게 맞는거 같아요.
방향 잘못 잡은 노무현을 임기내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판했건만..
결국엔 MB를 낳았고 본인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잖아요.

"결국 그들의 이해로 귀결되어선 안 된다"
반MB전선의 너무나 뻔한 한계. 김규항같은 사람들의 지적은 그나마 지식인 다운 모습이라고 보여지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