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품절


소설가의 문체는 적당히 아름다워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적당히 지저분해야 한다. 그것이 '산문적 일상'을 묘사/기술하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즉 소설가가 자신의 얼굴, 필체, 문체를 갖는 건 바람직하며, 동시에 좋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긴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문체 여서는 안 되다. (<내겐 너무 예쁜 당신>이란 프랑스 영화의 문제의식이기도 한데 '너무 아름다운 여자'는 아내로서 적합하지 않다. 결혼생활은 '산문적'이기 때문이다.)-82쪽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요구는 폭투처럼 컨트롤이 안 되는 요구다. 근본적인 변화라는 건 아무도 정의/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와일드'하며 '정의'를 닮았다. 단 그것이 '근본주의'에 붙들리지 않는 한 말이다. 하지만 '폭투로서의 정의'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혹은 위엄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해야 한다. -110쪽

우리는 그릇된 '폭력적분출'과 진정한 '혁명적 돌파'라는 기적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미리 가질 수 없습니다. 기적은 오직 이전의 실패의 반복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폭력이 혁명적인 저잋 행동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인 것이죠. 만약 혁명에서 이러한 과잉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혁명 없이 혁명을 얻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폭력이라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혁명적 폭력', 곧 진정한 해방적 행위로서의 폭력이란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341쪽

반세계화 운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명한 듯이 말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태클을 걸어야 합니다. 즉 자유민주주의가 자본주의적인 사적 소유 없이는 존립할 수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우리는 진정으로 반자본주의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343쪽

우리가 정작더 무서워할 만한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관심'이고 어짊'이다.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이다). 우리의 울부짖음을 불쌍히 여겨 설혹 한천사가 우리를 껴안아준다고 해도 문제는 우리가 그걸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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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연약한' 우리가 견뎌내기에는 너무 강한 정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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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진리'나 '복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맨정신으로 대문자 '진리'를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런 '진리'를 견딜 수 있을까? (살아남는 일은 많은 거짓말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공연히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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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전율'을 느끼지 않으면서, 그래서 기절하지 않으면서, 그 숨 막힐 듯한 '믿음'에 질식사하지 않으면서, 정말로 견딜 수 있는 것인지? 해서, 밥 먹듯이 기도하는 사람들을 나는신뢰하지 않는다. (그건 믿음이 아니라 일상이거나 비즈니스일 것이다) 왜냐고?

"내 울부짖은들 천사의 열에서 누가 들어주랴.
설혹 한 천사가 있어 갑자기 나를 가슴에 껴안는다 해도,
그 강한 존재로 말미암아 나는 스러지고 말리라. " 릴케 -403쪽

나는 책들의 성좌, 문학과 사상의 '지도를' 작성하는 데 취미가 있다. -414쪽

인문은 '사람의 무늬'란 뜻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 인문학의 책임은 우리가 '무늬만 사람'인 이들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나 할 거 없이 기본적으로 많이 읽어야 하며,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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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인 르네 샤르는 시를 '영혼의 끼니'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러한 끼니로 '비만한' 영혼들을 좋아한다. -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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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7-13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도 리뷰 쓰리가 엄두가 안나는 1인...ㅎㅎ

라주미힌 2009-07-13 10:55   좋아요 0 | URL
밑줄긋기로 때워야죠 뭐.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