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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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생산 기능을 갖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설령 갖춘 곳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 생산물들은 대부분 도시 안에서 소비되어버렸다. 도시는 농촌으로부터 생산물과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25쪽

삼성종로타워. 도시 공간에서 랜드마크 구실을 하고 있는 대형 건물들은 모두 자신을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해 장식을 사용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대표주자 삼성을 상징하는 이 건물은 공간을 '낭비'함으로써 역석적인 장식성을 표현하고있다. 이 건물은 그 자체로 '낭비'와 귀족적 소비가 동일시되는 현대 자본주의의 상징물이다. -96쪽

17세기 중반부터 서울 문체와 시골 문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의 경화 자제들은 시골 유생들이 배우기 어려운 새로운 문체를 배웠고, 출제자들은 그에 합당한 문제를 냈다. 서울 선비들은 사륙문을 새로 익혔으나 시골 선비는 그를 제대로 배울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경화거족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급제할 수 있는 길을 넓혀주었고, 그럼으로써 자기들만의 서울, 자기들만의 나라를 만들어갔다. 정교하게 고안된 과거와 전고의 여과장치를 거치면서 '명가의 자제는 날 때부터 다르다'는 생각이 퍼져나갈 공간도 넓어졌다. -101쪽

신분제를 사회 운영의 핵심 원리로 간직하고 있던 중세도시에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신분을 가리키는 표지를 달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그 중세성이 해체디어가면서 도시는 이제 '익명성의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 중략 .....
시전 상인들 역시 중촌에 살아 스스로를중인으로 치고 있었는데, 정체불명의 사람을 대하면서 호칭에서 먼저 손해볼 수는 없었다. 어정쩡하게 얼버무리는 존대가 만들어진 것은 그런 심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144쪽

길을 새로 내거나 어떤 구조물을 새로 짓거나 하는 일은 결국 그 안에 살고 그 안에서 왕래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태도를 지배하는 효과를 낳는다. '민감한 권력'은 이 효과를 간과하지 않는다. .... 도시 공간은 그 위에서 살아가는 주민과 권력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고, 권력이 주민을 통제하고자 하는 방향을 나타내준다. -194쪽

마르크 블로흐가 말한 대로 중세의 농민들은 시간에 무관심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굳이 시간이 아니더라도 복종해야 할 대상이 너무 많았다. -228쪽

치명적인 전염병에만 천벌이라는 이미지가 붙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사소한 질병도 대개는 죄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해왔다. 나태,불결,음란,탐욕,흡연,음주 등 개인의 악덕은 신체의 균형을 깨뜨리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라기보다는 신의 뜻에 위배되기 때문에 나쁜 것이었다. 그 때문에 불과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병자와 죄수를 같은 부류로 취급했다. -245쪽

현대 의학에서 질병은 '아픈 상태'가 아니라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현대인들은 자기 몸에 대한 포괄적 판단 권한을 의학에 양도한사람들이다. ... '염병할'이 지독한 저주에서 가벼운 '상소리'로 지위가 급락한 것은 이 모든 과정과 함께였다. -259쪽

집 밖으로 나온 여성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자신의 '성 정체성'에 어울리는 일을 하는 여성과, 남성의 일을 대신하는 여성으로.
앞의 여성들에게는 대체로 직업 자체에 성을 표현하는 글자가 포함되었고 뒤의 여성들에게는 직업 앞에 '여'자를 첨부해서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는' 여성임을 표시했다. 산파, 간호부, 전도부인, 침모 또는 식모, 매소부, 유녀 그리고최근까지있었던 가정부나 안내양 등은 순연한 여성 직업이었고, 여의사, 여기자,여선생,여학생,여직공,여점원,여급,기타 수많은 '여..'은 남자 일에 '끼어든' 여자들을 지칭했다.-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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