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블데드를 기억한다면 이 영화는 필히 봐야할 것이다.
B급의 샘 레이미는 부활하였고, 공포와 재미의 뿌리는 같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다.
감각의 근저를 잡고 앞뒤로 흔드는 재주는 여전했다.
특히 미장센을 마구 이용할 줄 아는 감독만의 정석 플레이가 인상적이다.
음향과 도구, 배치, 기이하고도 엽기적인 반전으로 관객에게 치기 어린 장난을 친다.
'심도있게 그려낸' 주인공과 노파의 육박전에선 웃어야 될 상황이 아닌데도 웃음이 터져나온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이런 아이러니의 시퀀스는 역설의 미학이자 유머의 실체이기도 하다.
들어가는 입 = 나오는 입.
감독이 유난히 집착하는 '입 전쟁'은 들어가야 할 것과 나오지 말아야 할 규칙에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파리, 손수건, 고양이, 손...  그 모든 것들로 그것이 입이 아님을 말한다.
저주의 원인이자, 저주를 받아들이는 입구인 것이다. 
아이러니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노파의 무지막지한 저주, 노파가 그렇게 힘이 세고 질길 줄이야.
1만 달러의 현찰을 쥔 영매와 퇴마의식,
마지막 장면에서는 99분의 허무와 막장스러움을 더한다.

노파의 저주, 저주스러운 노파를 보면 자본주의의 역풍은 정말 끈덕지게 질기고 추악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채식주의자에게 희생된 제물로도, '지점장이 시켰어요'라고 시스템으로 그 책임을 돌려도,
지옥의 문 앞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대인의 운명을 감독은 어떻게 보았을까..
'에이 재수없어'
단지 재수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작은 욕망만이 있었을 뿐이고, 그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던 생활의 일부이지 아니한가..
저주란, 어쩌면 단지 교통사고처럼 느닷없음의 다른 말이 아닐까... 

다른건 몰라도,
3일간의 지옥같은 삶이 오히려 막힌 변기가 뻥~하고 뚫리는 듯한 시원한 느낌을
준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영화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러니했다.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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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4 18: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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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4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