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를 타고 왔다.
하루의 1/6... 눈뜨고 있는 시간으로 따지자면 1/4 가량을 길에서 보내는 교통카드 인생..
하루의 척추같은 일들로 서재를 장식하는게 인생의 낙이 되버렸나.. -_-;;
오늘도 척추측만증 수준으로 보냈기에 기록으로 남기노라...
쫀쫀한 몸 만든답시고.. 싸이클 40분 돌리고, 덤벨 만지작 거리다보니 늦었다.
막차의 매력은 뭐랄까... 하루를 길게 보냈다는 확인도장 같다고나 할까..
한달에 5~10일 정도는 거의 막차를 타는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막차는 나의 전용차량이었는데.. 나도 이제 관절 좀 펴고 살려나..;;
하여간..
지하철 종착역에 내리고.. 막차 버스를 기다렸다.
정말 좋은 시스템 아닌가.. 막차만 갈아타면서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란...
마치 모든 교통편이 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하여간...
4명이 버스정류장에 섰다..
양복입은 신사는 주저할 것 없이 택시 잡아서 타고 간다..
한 젊은이는 벤치에 앉아서 휴대폰에 코를 박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여성은 버스 아직 있냐고 나에게 묻는다. 나는 알이 꽉 차게
'몰라요'라고 답했고 그걸 듣자마자 바로 택시 타고 간다..
그리고 나... 휴대폰에 코를 박고 뭔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의 마음을 푹 놓은 자태를 보아하니
나도 마음이 놓였다..
버스 기다리자.. 택시타면 2400원이다... 아껴야 잘살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다소곳하게 서 있었다..
10분 뒤... 승용차 한대가 오더니.. 휴대폰에 코를 박고 뭔가를 열심히 하던 젊은이를 태우고 간다.
'버스 기다린거 아녔어?'
버스도 안오고.. 외진 곳이라... 택시도 다니지 않는 시각이다.
아... 웬지 그 젊은이가 미워진다.. 버림 받은거 같고... 나만 마음 준 거 같고...
이천사백원에 내 발이 묶여버리다니...;;;
할 수 없지... 걷자...
30분 걸으면 된다... 10분 버스기다리고.. 10분 택시기다리고... 30분을 걷는게
좀 꿀꿀하지만... 하숙집같은 나의 집에 어서 가야 내일 출근하지.. -_-;
5분 걷다보니.. 택시가 시원하게 내 옆을 지나간다..
'쌰앙~~~ ' 하면서 지나간다..
'밤의 피크닉'처럼...
아늑한 어둠, 나무 냄새와 불빛이 흐트러지는 길을 걸으며 밤의 취향에...
젖고 싶었지만..
'아.. 택시 탔어야 했는데.. 아.. 택시... 시간이 벌써.. 으... 자야지 일어나지... 어서 걷자'
'갈길이 멀구나.. 이랴 이랴.. '
'양복 입은 신사처럼 마치 버스가 끊겼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날렵함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
이 이런 잡스런 생각만 하면서 걷는다.
왜 오른쪽 발목은 시큰거리는지... 팔에 감기는 거미줄이 누군가의 머리카락 같아 신경쓰이고..
계속 걸었다. 인생은 원래 잡스러운거 아니겠어..멋대로 생각하다.. 최선의 판단임을 착각하다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나아가다 빠르게 지나치는 것들에게 버림받는.. 그래도 발길은 멈출 수 없고, 무겁다가도 이내 인정하기 쉬운 상태에 젖어드는...
하여간..
오늘밤의 하이라이트는 그랜드 캐년처럼 펼쳐져 있는 공사장을 만났을 때 였다..
나의 앞길을 막고 좌우로 한 없이 뻗어져 있는 아주 깊고도 광활한 공사장...
별게 다 길을 막는구나.. 오늘 밤은 참으로 길고도 험하다...
그러나.. 공사장에도 휴머니즘이 녹아있더구나..
지하 3층은 되보이는 듯한 깊은 계곡을 건너는 구름다리(철판길) 곧게 뻗어있었다.
길이 나에게 말을 건다..
'지나가라...'
길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가야할 곳에 있고, 없다가도 생긴다.
이 밤도 곧 지나갈 것이고... 나는 또 오늘을 살아갈 것이고...
내일은 내일의 길이 열릴 것이다...
아.. 내일은 팀원들에게 커피 사는 날이구나... 그냥 지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