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의 끝나고 밤늦게 뒷풀이를 하느라 뉴스를 챙겨듣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자 한겨레 신문을 보니, 1면 탑으로 권양숙씨가 박연차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기사가 실렸네요. 비록 노무현 정권의 지지자는 아니지만, 솔직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참여정부가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이 정도로 한심한 수준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깨끗하다는 것은 미디어로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 노무현 전대통령은 당시 대선 과정에서도 선거자금으로 검은 돈을 받았지요. 그때 "이회창 후보가 받은 돈의 10분의 1"이라는 논리로 대충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참여정부의 실세들이 여기저기서 검은 돈을 받아왔다는 것은 이미 드러난 사실. 거기에 형 노건평에 이어, 부인 권양숙(어쩌면 전대통령 본인)까지 부적절한 돈거래를 했음이 드러났네요. 이 정도면 총체적 파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노무현은 민주당이 보여줄 수 있는 개혁성의 극한이었습니다. 그는 아직까지도 전세계에서 인터넷 덕에 당선된 유일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앞으로 오랫동안  2002년 당시의 노무현만큼이나 참신하고 개혁적인 후보는 다시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었고, 거의 종교적 열정에 가까울 정도로 그를 신봉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어리석을 정도로 무구했던 그 순수한 신뢰를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배신해도 되는 것인지.... 안타깝습니다.

민주당은 지금 정동영 문제를 놓고 시끄럽습니다. 이른바 '친노계열'과 '구민주당' 계열의 권력투쟁이겠지요. '친노'든, '구민주'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합니다. 친노는 이미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구민주는 낡은 지역주의 정치에 의지해 의원직이나 유지하는 신세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구태를 벗고 거듭나겠다는 의지조차 안 보입니다. 이러니 아무리 '반MB'를 걸어도 국민들이 거기에 선뜻 호응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민주당에게는 뭔가 근본적인 결심이 필요합니다.
 
이게 진보진영이 그냥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사안은 아닙니다. 개혁과 진보는 서로 투닥거리고 싸워도 결국 지지율은 서로 연동되어 움직여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 구태가 민주당만의 것은 아니었지요. 과거의 민주노동당 역시 낡은 패러다임에 묶여,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신당이 얼어죽을 각오를 하고 민주노동당을 뛰쳐나온 것은 잘 한 일이었습니다. 목숨을 걸지 않는 개혁은 가짜 개혁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개혁은 남을 바꾸기 전에 자신부터 바꾸는 데서 시작하는 겁니다. 

논객의 입장에서 풍경을 그리자면, 지금 진보개혁 세력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논객들이 넘쳐 났었지요. 그 많던 논객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요? 민주당에 목을 맸던 논객들은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세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의 친노 논객들은 권력의 붕괴와 더불어 모래처럼 흩어졌습니다. 민주노동당 에는 논객이 없고, 남은 것은 진보신당 계열의 논객들 뿐. 우리가 무슨 일당백의 관우나 장비도 아니고, 정권에 장악되어가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솔직히 힘에 부칩니다.
 
바로 그것이 또한 진보신당이 처한 처지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의 개혁바람에 힘입어 진보가 강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 없이 홀로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과거에는 이른바 개혁세력과 가끔 콤비 플레이도 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것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MB 정권 아래서 고통받는 국민은 희망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보신당이 나름대로 분투를 하고는 있으나, 아직 국민들에게 희망으로 다가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충 언론 플레이나 하고, 이슈나 만들어내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인 대안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왕도는 없습니다. 바닥에서 기는 수 밖에요. 그렇기 때문에 당원 동지들의 '열정'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개혁세력이 했던 몫까지 이제는 진보신당의 당원들이 해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두 세 배의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화력과 병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수해야 할 영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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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04-08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기억나는군.. 이회창의 1/10 .. 흐흐흐
1/10이 더 된다는 얘기도 있더랬지..

바이런 2009-04-0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 노무현을 희망으로 삼던 사람 중 1人입니다. FTA이후로 마음을 접었지만, 어제는 너무 화가나서 눈물이 다 나더군요ㅜㅜ 배신감이 너무 크고, 한때는 밤잠설쳐가며 지지했던 사람에 대한 야속함때문에 억울해서 울었습니다.=_=;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게 정치라던데, 어째서 우리나라 정치인은 눈물만나게 하는건지 ㅜㅜ

라주미힌 2009-04-08 15:24   좋아요 0 | URL
저도 노무현 찍었어요...ㅡ..ㅡ;
취임하고나서 얼마 안되가지고 접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