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문광부에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시킬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며칠 전의 보도를 보니, 유인촌 장관의 의지는 확고한 듯하다. 지난 7년 동안 국립오페라합창단은 한국 오페라 문화의 발전에 적잖이 기여해 왔다. 그것이 또한 음악계나 문화계의 일반적 인식이라고 알고 있다. 왜 그런 단체를 해산시켜야 할까? 의문은 여기서 비롯된다. 비용 문제는 아닌 듯하다. 단원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 70만원의 봉급에 약간의 연주수당만 받으며 전국을 순회하며 연주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문광부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오늘자 동아일보에 난 장관의 인터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립오페라단에는 합창단 규정이 없다. 지난 단장이 인건비 책정 없이 단원을 뽑아 사업비에서 인건비를 써왔다. 이건 정상적이 아니다.” 이것은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도 부정하지 않을 게다. 문제는 이 비정상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 상식적인 해결책은 이제라도 규정을 마련하여 그들의 법적 지위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합창단 측에서는 몇 년 동안 문광부를 향해 그런 요구를 줄기차게 해왔던 것으로 안다.


그저 “합창단 규정이 없다.”는 얘기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사항은 ‘과연 오페라 합창단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만약에 오페라합창단이 필요하다면, 없는 규정을 이제라도 마련해서 그들의 법적 지위를 보장해줘야 할 일이다. (반대로 오페라합창단이 정말 필요가 없다면, 그들의 말대로 당장 해산을 시켜야 할 일이다.) 규정은 어디까지나 오페라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오페라단이 규정을 위해 존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로 물어야 물음은 이것이다. ‘과연 오페라합창단은 필요한가?’


국립오페라합창단은 필요한가?


문광부의 입장은 당연히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 중의 하나는 오페라에 대한 장관의 오해다. 보도에 따르면, 유인촌 장관이 “외국에는 오페라단에 정규직 합창단이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자 국내에 공연차 머물고 있던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의 성악가와 스탭들은 “이탈리아에만 13개의 오페라 합창단이 존재한다.”며, 유인촌 장관의 말을 현장에서 반박했다. 또 유인촌 장관의 말을 전해들은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합창단원들은 “그럼 우리는 누구냐?”며 어이없어 하기도 했다.


‘오페라 합창단’이 필요 없다는 생각은 실은 MB 정권의 신념인 구조조정의 발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미 국립오페라합창단 외에 국립합창단이 있으므로, 그 인력을 활용하면 된다는 것. 하지만 이 논리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 국립합창단은 콘서트를 위한 합창단으로 자기의 연주일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자기 일정을 소화하면서 1년에 50회가 넘는 오페라단의 일정까지 모두 소화해낼 수 없다. 이미 음악계에서 지적했듯이, 그런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전임 정은숙 단장이 따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만들어야 했던 것도 실은 그 때문이었다.


신임 이소영 단장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 합창단은 2002년 정은숙 당시 단장이 공연 때마다 합창단을 뽑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만든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는 오페라합창단의 존재를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본다. 하지만 이소영 단장처럼 공연할 때마다 그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을 경우, 공연의 질적 저하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일례로, 이 단장은 지난 <피가로의 결혼> 때 외부 합창단 섭외가 어렵자 동네의 대학 합창단을 데려다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역예술문화의 창달’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는데, 이 정도면 거의 개그 콘서트 수준의 변명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일정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페라합창단이 존재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오페라 합창단은 국립합창단과 성격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 순수합창과 오페라 합창은 서로 발성이 다르다고 한다. 또 오페라의 경우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액팅’이라는 요소가 들어간다. 그래서 외국의 경우 극장에 오페라 전문 합창단이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이것만으로도 전문적인 오페라합창단의 존재 이유는 충분한 셈. 알만 한 사람이 왜 그러는지, 도대체 이소영 단장이라는 분을 이해를 못하겠다. 명색이 단장이라면, 문광부에서 합창단을 해체시키려 해도 자신이 앞장서 반대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국립오페라합창단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편법으로 운영되어 왔다면, 그 책임은 합창단원들이 아니라, 합창단을 그렇게 운용해 온 국립오페라단과, 그것을 알고도 해마다 도장을 찍어준 문화관광부에 물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국립오페라단은 7년 동안 합창단원들에게 상임화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해 왔던 것으로 안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게도 국립오페라단의 홈페이지에는 “규정이 없다.”는 그 오페라합창단이 버젓이 소개되어 있다. 그들은 누구란 말인가? 합창단은 오페라단을 홍보할 때만 잠깐 존재하는 오페라의 유령인 모양이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은 무슨 일을 해 왔는가?


오페라합창단은 그 동안 국립오페라단을 위해 굵직굵직한 공연들을 해 온 것으로 안다. 그 중에 몇 가지만 들어 보자. 2004년 한·불·일 합동 공연 "Carmen" - 정명훈 지휘, 2006년 창작오페라 임준희 작곡 "천생연분" 독일 초연, 2007년 창작오페라 임준희 작곡 "천생연분" 일본 초청공연, 2007년 대구오페라축제 "라 트라비아타" 대상 수상, 2008년 창작오페라 임준희 작곡 "천생연분" 북경올림픽 초청공연, 2008년 오페라 페스티벌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작품상 수상 등등.


이러한 성과를 내는 데에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일정하게 공헌을 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런 굵직한 공연들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밖에도 국립오페라합창단은 70만원의 박봉과 바쁜 일정에 쫒기며 수많은 지방 공연을 통해 지역의 문화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해 왔다. 이런 활약을 무시할 수 없기에, 합창단의 해산을 주장하는 측에서도 국립오페라합창단이 그 동안 해온 일에 대해서 차마 시비를 걸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이런 호평이나 수상의 경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지난 7년간의 활동을 통해서 ‘전문 오페라합창단’으로서 나름대로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미 한국 오페라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것은 국립오페라단원들이 박봉에 시달려가며 그저 ‘국립’이라는 명예 하나를 위해 어렵게 이룩한 것이다. 그 성과를 원점으로 되돌려, 공연할 때마다 부랴부랴 합창단을 섭외해서 대충 때워나가는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 못 된다.


전국 합창단 지휘자들, 전국의 음대 교수들, 그리고 전국의 여러 음악 단체에서 오페라 전문합창단의 해체에 반대하는 탄원을 올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게다. 성원은 외국에서도 오고 있다 "예술가들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립오페라 노조는 한국 합창단의 투쟁에 전적으로 연대하며, 가능한 한 모든 방법으로 최대한 도울 것입니다. 한국 국립오페라합창단의 행운을 기원하며, 당신들의 행동을 지지합니다.”(프랑수아 소바조 파리 국립오페라단 노조위원장)


문화예술과 시장의 논리


장관이 말한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의 방향”이란 결국 MB 정권의 시장주의 이념을 문화예술에 확장하는 것이다. 이른바 중복되는 기능을 통합한다는 구조조정의 논리인데, 사실 국립합창단,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은 그 구조상 협력할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당연히 일부 기능의 중복이 있어야 한다. 예산이 없다는 논리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국립오페라단의 예산은 외려 전년보다 늘었다.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지만, 국립오페라합창단의 경우 비용을 더 이상 절감할 수 없다. 월급 70만원 줘가며 연 50 회 이상의 공연을 시킨다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한계상황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국립오페라합창단의 존재는 비용-수익의 면에서 결코 적자라고 볼 수는 없다. 듣자 하니 국립오페라단찹창단에서 인건비로 나가는 돈이 1년에 단 3억 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과연 1년에 3억, 공연 수당 다 합해서 1년에 5억이 없단 말인가? 그렇게 살림이 궁한 문광부에서 지난 여름에 무슨 일을 했던가? 베이징올림픽에 연예인 응원단을 보낸답시고, 단 며칠 만에 2억 원의 예산을 썼다. 어느 연예인의 즉흥적 제안에 계획에 없던 돈을 2억이나 써도 되는 부처에서 1년 3억의 예산을 쓸 여력이 없다니, 이거야말로 초현실적 상황이다.


문제의 올바른 해결은 무엇일까? 국립오페라합창단이 지금까지 쌓아온 성과를 인정하고 그것을 보존하면서, 합창단의 법적 지위를 인정해주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더 철저한 오디션을 통해 검증된 인재들을 상근직으로 전환해가면서 장기적으로 ‘국립’이라는 명색에 걸맞는 세계적인 전문 오페라합창단으로 발전시키는 게 제대로 된 방식이 아닐까? 그러려면 당연히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국민들이 세금을 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시장논리로 환원할 수 없는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는 것. 유인촌 장관 자신도 취임 초 문화예술에서는 수익성을 전면에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꼭 오페라합창단만이 아니라, 예술인들에 대한 형편없는 대우는 우리 문화예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문화예술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 한, 이 나라의 문화예술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듣자 하니 현 정권은 공약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그것은 아마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창출되어야 할 제대로 된 일자리 중의 하나가 바로 문화예술의 일자리다. 현 정권은 하다 못해 인턴이라도 늘리고 있지 않은가? 국립오페라합창단은 대우 면에서 차라리 인턴보다 못한 자리다. 그런데 굳이 그것을 없애려고 하겠는가?


경제논리와 정치논리


문광부에서는 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시키려 하는가? 내가 보기에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경제논리로, MB 정권의 경제정책의 중요한 축인 시장주의 이념을 문화계에 무차별적으로 외삽하겠다는 얘기다. 장관이 말하는 “새로운 정부의 정책방향”이란, 한 마디로 MB 정권의 일반적 정책인 구조조정을 문화라는 특수한 영역에도 관철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식으로 경제와 문화의 차이를 무시하고 정권을 향해 자신들이 정부의 시책에 열심히 발맞추고 있음을 보여주려다 보니, 갑자기 문화의 영역에서도 이렇게 명박스러운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둘째는 정치논리다. 현 집권층에서 볼 때 정은숙 전임단장은 노무현 정권의 인사다. 유인촌 호(號) 문광부의 철학에 따르면, 임기와 관계없이 퇴임해야 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유인촌 장관의 좌파척결 발언 이후에 단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사퇴의 명분은 오페라극장 화재사건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었지만, 그가 통일운동의 대부인 문익환 목사의 며느리, 노사모를 이끌던 문성근씨의 형수라는 게 진짜 이유라는 게 문화계 안팎의 일반적 인식이다. 한 마디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하여 정은숙 전임단장의 그림자마저 지워버리겠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불필요한 연좌제다.


신임단장의 경우 국립오페라단에 근무하던 당시, 전임 정은숙 단장과 캐스팅을 놓고 갈등을 빚고 뛰어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건 사소한 에피소드겠지만, 아무튼 오페라단의 단장이라면 자기만의 합창단을 갖는 데에 이해관계를 가져야 한다. 즉 그에게 정말 단장의 자격이 있다면, 멀쩡히 존재하는 합창단을 없애겠다는 문광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관료들을 설득 해야 한다. 그런 일을 해야 할 단장이 외려 합창단을 없애는 일에 앞장서서 나서는 것은 분명 정상적 상황이 아니다. 이렇게 오페라의 눈이 문화가 아니라 정치를 향하는 것은 매우 슬픈 현실이다.


정권 바뀔 때마다 문화의 철학과 이념도 그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정말 후진적인 발상이다. 명분은 뭐라고 걸든, 이 현상의 본질은 결국 하나, 즉 정권에 끈을 댄 인사들의 기득권 싸움에 불과하다. 이 후진성을 한국적 관행으로 너그럽게 인정해 준다 할지라도, 그저 자리에 자기들 말 잘 듣는 사람으로 교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정권 바뀌었다고 플랫폼까지 바뀌는 것은 문제다. 필요해서 만든 것이라면, 언젠가 필요에 따라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권 바뀔 때마다 모든 성과를 무로 돌리고 원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면, 비합리적인 시간과 비용의 낭비만 남을 뿐이다.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은 권력의 상층부에서 이루어지는 밥그릇 싸움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들은 그저 70만원의 봉급을 받으며 전국 순회 연주를 하면서 한국 오페라 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에 기여했을 뿐이다. 그 공로로 협연자들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상도 받았다. 안타까운 것은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지내온 이들이 권력싸움의 희생양이 되는 것. 수많은 사람이 7년에 걸쳐 어렵게 쌓아온 성과를, 신임단장이 말 한 마디로 간단히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문화와 예술은 권력의 자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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