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들은 예수가 젤롯당의 무장항쟁이나 바리새인들의 시민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 것을 두고 정치적 해방에 관심이 적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예수가 젤롯당의 운동에 적극적이지 않거나 바리새인들과 마치 원수처럼 불화하는 모습을 보였던 건 예수의 관심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인민들이었기 때문이다. 설사 대로마 항쟁에서 이겨 해방된다 해도 인민들의 처지에선 억압과 착취의 주체가 로마인에서 같은 유대인으로 바뀌는 건 외엔 달라질 게 없었다. 바리새인들은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사람들이었지만, 율법 준수를 기준으로 하는 그들의 운동 방식은 율법을 일일이 지키다간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인민들에겐 또 하나의 끔찍한 억압일 뿐이었다. 예수는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이스라엘 민족’과 ‘하느님의 율법’을 부서트려 진정한 이스라엘 민족과 진정한 하느님의 율법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예수의 선택은 오늘 우리에게 몇가지 매우 직설적인 가르침을 준다. 그 중 하나는, 인민의 입장에서 조선은 아직 독립되지 않았다는 것, 인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던 주체가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 이다. 오늘 광복절은 것을 바로 그걸 기념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