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감각과 감성을 도취시키는 작업이다. 익숙한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이 주는 흥분은 정착적인 삶에 찌든 때를 말끔히 날려 버린다. 아, 그러나 현실이라는 벽에 가로 막힌다. 누가 대리만족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았을까. 게다가 음흉한 세력들은 책 같은 것으로 대충 해소하게끔 한다. 동경이 좌절의 토양 위에서 무럭무럭 자라듯이 반대급부는 어딜 가나 존재하나, 욕구 뒷편의 결핍이 근질거리는 것은 숨길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예술과 혁명, 열정의 라틴기행+화첩이라….
이럴수가 읽고 나니 머리, 가슴, 신체 어디에도 남은 것이 없다. 예술과 문학, 인물과 풍경이 범벅이 된 ‘정처 없는 기행’을 졸졸 따라다니는 데에 피로하기까지 했다. 저자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 공감할 수 없었다. 공감과 상상력을 자극하기엔 그림도 썩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김용택 시인의 ‘그림과 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는 평도 의심스럽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니깐 정답은 없는 것이겠지만, 감흥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최소한 변명거리라도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 이 책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고민해야만 했다.

인물과 명물, 풍경, 예술이 중심인 것은 좋다. 저자의 필력과 지식도 좋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의 살가운 삶의 이야기가 없다. '죽은 것들'에 관한 지식과 주관적인 느낌을 ‘감성의 언어’로 나열하느라 '살아있는 삶의 주체'들이 소외됐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어떤 재미도 느낄 수 없었다. ‘글재주’, ‘그림재주’는 이 책에 있어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였다. ‘대리만족’ 하려고 읽는 것인데 말이다. 글과 그림의 '전체적인 모양새'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손에 잡을 수 없는 이 물컹거림이란, 흡사 멀미처럼 느껴진다.

역시나 백문불여일견. ‘기행 도서’의 한계가 드러나 있는 책이라고 말하면 너무 혹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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