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블로그 - 역사와의 새로운 접속 21세기에 조선을 블로깅하다
문명식 외 지음, 노대환 감수 / 생각과느낌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경제가 수치와 통계에 의해 반응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인간적인 심리에 의해 움직인다. 마찬가지로 역사 또한 인간 감수성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권력과 욕망, 질서와 억압, 분열과 전제, 이상과 타협. 역사는 큰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각 개인들의 역사가 그 안에서 커다란 생명력으로 작용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체제,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거시사에 치중된 우리의 교과서는 균형을 잃었다. 역사 속의 개인들이 지워지게 되면 남는 것은 ‘대표성을 띤 치적과 인물’ 뿐이지 않은가. ‘실적주의’, 그것은 곧 역사의 현장 속에서 움직였던 주체들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 그래서 ‘기억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복권은 중요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적 대표성과 무관한) 우리들에 대한 자기 존중이 기반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주체였으면서도 객체로 밀려나게 된 것은 단지 그들을 위해 기록되어진 것이 역사라고 믿어왔기 때문이지 않은가. 이끌다, 끌려가다. 이 엄청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역사인식의 재인식은 시점의 변화만으로도 많은 가능성을 가지지 않을까.

주변에서 맴돌지만 말고, 역사 안으로 뛰어들어가 보자. 그들이 설명해왔다면, 이젠 우리가 설명할 차례다.

이 책은 그런 면에 있어 신선한 시도를 하고 있다.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소통하려는 데에 역점을 두려 한다. 불로구(不怒口)와 갑회(甲會).
블로그와 카페는 대중의 감수성과 가치를 녹여내고 세상과 호흡하는 창으로 자리를 잡았다. 공감과 이질감이 뒤섞인 문화의 대장간, 여론과 의식의 용광로, 권력의 시발역으로 작용한지도 불과 몇 년 만의 일이다. 물론 ‘잡음’이 많다는 부작용도 있지만, 그것 또한 정보와 지식의 독점 해소라는 기능에 비하면 그리 큰 일도 아니다. 이것을 역사에 대입시킨다면 소통을 가로막던 벽을 부수는데 꽤나 효과적이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양반, 농민, 왕, 관료, 실학 카페, 속화 카페 등 역사가의 시점을 안으로 투입 시킨 점은 지적 흥미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하다. 각 계층과 특정인들이 보았을 당대의 망탈리테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양반의 일기에 기반한 ‘양반 블로그’와 요즘의 댓글문화를 가장 완성도 있게 패러디 한 속화 카페의 ‘본좌논쟁’이 가장 재미있게 본 부분이다. 그러나, ‘위인’과 ‘사건’ 중심의 역사관은 피할 수 없었나 보다. 블로그의 형식은 빌었으나 ‘기능’까지는 무리였다. 사료가 부족했을 수도 있겠고, 마켓팅 포인트가 청소년에 맞춰져서 교육자료의 성격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나 조선 역사책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왕들, 의병, 이순신 등의 재등장은 뇌에 딱지가 생길 지경이다.

그럼에도 책 전반에 스며든 재치가 책의 의도를 보완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점을 들자면 ‘먹기 좋은 책’임은 자명하다. 특히 펌, 만화, 댓글에서 풍기는 해학과 패러디의 솜씨는 유쾌했다.(좀 유행이 지난 것들이었지만) 뿐만 아니라 논쟁적 화두를 던지는 솜씨는 많은 고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독자에게 편안한 모습으로 나타난 ‘역사책의 프로포즈’… 이 정도면 받아 들일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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